설교

좋은나무시리즈 (3) - 좋은 나무는 옥토에서 자란다. (마 13: 1-9)

비전의 사람 2015. 9. 9. 12:03

좋은나무시리즈 (3) - 좋은 나무는 옥토에서 자란다. (13: 1-9)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13: 8).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위에서 자라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가지고 있더라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몇 해 전에 몽골에 선교 여행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자연농업의 권위자인 조한규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척박한 몽골의 땅을 비옥화시켜서 농사를 짓는 것을 연구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몽골은 척박한 땅이라 말이나 양을 키우며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고기를 주로 먹으나 채소나 과일을 먹지 못하여 수명이 짧았고, 국민의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척박한 땅에서 조박사님은 땅을 개간하여 좋은 토양을 만들어서, 벼나 농작물을 키워 몽골국민들이 양식을 풍성하게 얻도록 돕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은 화학비료에 오염되지 않은 토양, 즉 자연적인 토양이 좋은 열매를 맺는 농작물이나 나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강의의 핵심은 좋은 토양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좋은 나무가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좋은 마음의 밭은 어떤 것인가요? 예수님은 비유로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밭을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네 가지의 마음에 대하여 가르치쳤습니다.

 

1. 첫째는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13: 4).

 

길가의 땅은 굳어져 있습니다. 굳어져 있기에 씨가 떨어져도 흙 속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딱딱한 마음이 생명의 씨를 흡수하지 못하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맙니다. 땅이 씨를 흡수하면 생명이 살아서 자라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딱딱한 마음은 그 씨를 조금도 흡수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13: 19). 길가와 같은 마음은 복음의 말씀을 듣지만,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 즉,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812 절에서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8: 12). 사탄이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복음의 소식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까요? 사탄이 그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기자는 사탄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 4). 사탄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의 영광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생명의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을 때에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살아계실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며 그 분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길가의 땅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땅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밟기 때문에 굳어져 있습니다. 굳어진 마음에는 씨앗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우리 안에 복음의 말씀이 전해질 때에, 우리는 강팍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했을 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사무엘 웨슬리의 15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잔나 웨슬리의 신앙 교육에 힘입어 경건한 삶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holy club 을 조직하여 경건 운동과 구제 사업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졸업 후에 북아메리카로 선교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는 그 여정에서 모리비안 교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 두려움이 엄습하여 떨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모라비안 교도들은 평안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폭풍이 지난 후에 웨슬리는 한 모라비안교인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우리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라는 답변을 듣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그의 일기장에 나의 일생중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라고 기록햇습니다. 그가 말한 영광은 구원의 빛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일생 처음으로 그 구원의 빛이 존재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배가 북미에 도착하자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이 무언가 잘못돼 있음을 깨달아 모라비아교 목사 스팽 겐베르크에게 신앙상담을 하면서 새로운 신앙 체험을 하게 됩니다. “웨슬리 선생, 성령께서 친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이 물음에 웨슬리는 무슨 말로 대답할지 몰라 주저합니다. 이때 스팽겐베르크 목사는 다시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웨슬리의 마음에 진리에 대한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 후에 웨슬리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모라비안 교도들과 교제를 나누다가 어느 날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1738 년 어느 수요일에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가에 있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거기서 중생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거기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다. 915분 쯤, 그 낭독자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변화를 가져 오시는 일을 묘사하는 말을 듣는 중에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 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고 있음을 느꼈고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없이 하였다는 확신이 생겼고 나같은 자의 죄를 다 사하시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존 웨슬리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후에는 그의 삶과 사역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는 전에는 율법과 형식에 매여 있던 것에서 변화가 되어, 구원과 은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웨슬리는 구원의 확신을 얻은 지 8일 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너희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영국국교에서 그를 배척하고 강단을 허락하지 않자, 그는 야외설교를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부친의 묘석 위에 올라서서 밤마다 집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야외에서 설교를 하면 삼천명이나 참석하는 집회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순회하면 집회를 열어서 4천번 이상의 설교를 했고, 전도 여행한 거리가 40km 에 달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변화는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깨달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2. 둘째는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3: 5).

 

두 번째의 마음은 돌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돌밭의 특징은 흙보다 돌이 많은 것입니다. 주님은 흙이 깊지 않고 얇다고 하셨습니다. 흙이 깊지 않기에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해가 뜨게 되면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밭을 영적으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3: 20-21). 돌밭에 뿌리운 것은, 처음에는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받았으나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가 됩니다. 누가복음은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8: 13).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다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기쁨으로 말씀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려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피상적인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마음이 순수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심지가 굳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게 되면 쉽게 넘어지게 되며, 심지어는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넘어지는 자요.’ 라고 묘사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발견한 것은 군데 군데 나무가 뿌리채 뽑혀서 누워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무들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데, 어떤 나무들은 누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행한 형제님께 물었습니다. 왜 저 나무는 뿌리채 뽑혀서 누워있을까요? 그러자, 그 형제님이 뿌리가 약해서 넘어졌을 겁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한 바람이 불대에 뿌리가 강하면 바람과 폭풍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지만, 넘어진 이유는 뿌리가 약하여 그 힘을 지탱해 주지 못하고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기적의 사과를 자연농법으로 만들어낸 기무라 라는 일본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의 사과가 변화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토양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면서부터 였습니다. 그는 토양이 자연으로 돌아갈 때에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과나무는 깊이 20 m 까지 뿌리를 내리면서 좋은 양분과 수분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태풍이 불어 다른 사과나무는 다 떨어져도, 기무라씨가 재배한 사과나무는 80 % 이상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돌밭과 같은 마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열매를 맺기 전에 뿌리가 없어서 환난이나 핍박이 찾아오면 쉽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제주도에 가니까 감귤 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일년에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저렇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슬펐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런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수가 있을까요?

 

돌과 같은 마음의 밭은 먼저 돌과 같은 장애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마음에 돌과 같은 굳어진 마음이 있다면 그 돌을 빼어내고, 주님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2: 6-7). 우리는 예수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세워지게 되고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굳게 서야 합니다. 인생에서 시험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인하여 핍박이나 환난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면 그 분이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셔서, 어떠한 시험도 이기도록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옥토와 같은 좋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3.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13: 7).

 

가시떨기의 마음은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기에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13: 22). 가시떨기의 마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 세상의 염려가 가득합니다. 가시떨기는 돌밭보다 더욱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세상에 나갑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세상에 대한 염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갑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환경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염려하게 됩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기에, 늘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재리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가시떨기의 마음은 재물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신앙보다는 재물을 선택합니다.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떠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나 마음의 가치관은 변화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돈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마음으로 주장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물질의 유혹이 찾아오면 쉽게 신앙의 타협과 함께 믿음에서도 떠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셋째, 세상의 즐거움을 사랑합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8: 14).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세 가지로 인하여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염려와 물질, 그리고 이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쾌락을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와 교제하는 삶보다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밭은 세상에 매여있는 삶입니다. 오늘날 라스베가스와 같은 도시는 거대한 카지노와 호텔들로 구성된 환락의 도시입니다. 그곳의 사람들의 목적은 오직 물질과 쾌락을 얻기 위해서 모인 도시인 것입니다. 그러한 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풍요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매여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매여서 염려와 재물,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자유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13: 8).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음은 밭과 같습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30, 60, 100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는 좋은 마음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습니다. 좋은 땅은 좋은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듣고의 의미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며 ‘pay attention to , understand, obey'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집중해서 들음으로 이해하고, 그 결과로 순종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순종하기 위한 마음으로 듣기 때문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 17).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판단하고 정죄하기 위하여 그 말씀을 들었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입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13: 2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그 말씀을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마음에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생명을 주며 지혜와 명철을 주는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이해할 수록 지혜가 자라며, 진리 안에서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와서 거짓 교리를 전해주면 믿게 되어 오류에 빠지게 되며 심지어는 이단에 빠지기도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지킨다의 의미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향하며,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항해사는 어떠한 바람이 불거나 풍랑을 만나도 오직 목적지를 향하여 항해를 합니다. 자신의 배가 풍랑에 표류하는 것에 맞서서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푯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랑과 철학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여 우리를 표류하지 못하도록, 말씀의 원리를 지켜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 15). 인내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꼭 어려운 환경을 통과하여 견디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인내로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성품을 계발해야 합니다. 인내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6:14-15). 우리가 인내로서 믿음을 지키면, 그 믿음의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의 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변화하기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길가인지, 돌밭인지, 아니면 가시떨기인지, 그리고 옥토인지를 구분하여 영적인 변화를 위하여 결단해야 합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기에, 그분을 영접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돌밭이라면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돌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환난이나 시험이 찾아오면 넘어지게 됩니다. 마음의 돌이 무엇인가요? 마음에 말씀을 막는 강팍한 마음이나 죄를 의미합니다. 마음의 견고한 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회개를 통하여 마음을 기경해서 부드러운 옥토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을 의지하여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가시떨기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나무는 세상에 매여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 그리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통로가 막혔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넷째는 옥토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말씀을 사랑하며 사모합니다. 그 분의 말씀을 기뻐하며 지킵니다. 이러한 마음은 인내할 때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점검하여 자신의 영적 변화를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