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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23) - 속죄일의 영적의미 (레위기 16장)

비전의 사람 2019. 9. 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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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의 여행(23) - 속죄일의 영적의미 (레위기 16)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소죄할지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16:33-34).

 

레위기 16장은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에 행해야 할 규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속죄일은 유대 달력으로 710일 하루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속죄를 받는 가장 중요한 절기였다. 속죄일은 이스라엘이 민족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속죄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속죄는 히브리어로 כִּפֶּר (카파르) 이다. '카파르' 라는 속죄는 죄를 덮다(cover over), 화해하다 (pacify, make propitiation), 속죄(expiation)’ 라는 뜻이다. 이와같이 atonement 라는 속죄에는 두 가지의 성경적인 개념을 갖게 된다. 하나는 속죄(expiation)이고, 다른 하나는 화해(propitiation)이다. 속죄는 사람들을 죄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해는 하나님의 분노가 희생양의 피로 인하여 누그러지고 죄인들을 받으시고 교제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희생 제물의 피로 인하여 속죄를 받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1. 속죄일의 목적

 

속죄일의 목적은 제사장과 성막,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여 정결케 하는 것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백성의 불순종은 그들을 부정하게 하였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이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더럽혀졌다(15:31). 장막이 더럽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오면 자신들의 부정함으로 죽을 수 있었기에 하나님은 속죄일을 통하여 민족적인 속죄를 하도록 하셨다. 레위기 1616-19절은 속죄일에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죄를 인하여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속죄하고 거룩하게 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6:16). 속죄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성소가 정결하게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속하여 거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속죄일은 성소를 속죄하여 정결하게 할 뿐 아니라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되어 정결하게 하는 날이었다.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의 제사로 통하여 죄를 용서받아 정결하게 되는 것은 중요한 속죄일의 의미였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16:11). 아론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의 제사를 드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었다(16:30).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속죄받아 정결하게 되는 날이기에 그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안식일처럼 엄숙하게 보내야 했다 (16:29).

 

2. 속죄일의 절차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두 아들이 성소에서 죽은 후에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이라도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 사망을 피하라고 하셨다 (16:1).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성소의 거룩함을 존중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큰 경종이 되었다. 특히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속죄소 위에 임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의 중보자로서 일 년에 한번인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그는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먼저 자신의 몸을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한 후에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어야 했다. 이날에 입는 대제사장의 옷은 평소의 화려한 에봇이나 푸른색의 겉옷이 아니라, 세마포 속옷과 고의, 띠와 관을 써서 하나님 앞에 겸손과 회개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 (16:4).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로 수염소 둘과 번제물로 수양 하나를 취하였다.

 

대제사장이 속죄일을 지키기 위한 준비가 마친후에 먼저 속죄제를 드렸다. 그는 수송아지로 자신과 자신의 권속을 위하여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염소로 속죄제를 드렸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16:11). 대제사장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 수송아지를 잡은 후에 향로를 취하였다. 그리고,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채우고 향기로운 향을 넣은 후에 지성소에 들어가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웠다.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릴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 (16:13). 지성소에서 향연을 피운 이유는 향의 연기가 속죄소를 가리워 제사장이 하나님을 보아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대제사장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속죄소 앞에 일곱번 뿌렸다 (16:14). 속죄소에 뿌려진 수송아지의 피는 대제사장과 그의 가족의 죄를 속죄하였다. 속죄소는 십계명과 만나, 아론의 지팡이를 담은 언약궤를 덮고 있었다 (9:4-5). 속죄소에 뿌려진 피는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대속 제물의 죽음으로 속죄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린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은 두 염소였다. 대제사장은 두 염소를 취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 하나는 속죄제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광야로 보내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16:8). 대제사장은 제비를 뽑아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뿌린 염소의 피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와 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16:16-17). 대제사장은 성소의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로 단의 뿔들에 바르고 손가락으로 번제단 위에 일곱번 뿌렸다. 번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번제단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16:19). 속죄제의 수송아지의 염소의 피는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였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정결하게 되었다.

 

속죄의 제물로 피를 뿌린 후에 대제사장은 아사셀을 위한 산 염소를 광야로 보내었다. 대제사장이 성막을 성결하게 한 후에 산 염소를 취하였다. 산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였다. 아사셀은 히브리어를 음역으로 표기하였다. 아사셀에 대한 해석은 흠정역에서는 희생양(scapegoat)으로 번역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죄의 짐을 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광야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사셀을 전적으로 옮긴다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염소가 가는 광활한 지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광야에 사는 사탄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 의식의 제물이 사탄에게 가는 것은 맞지 않는 해석이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뜻은 이스라엘의 백성의 무거운 짐을 지고 광야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아사셀을 위한 산 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하며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고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속의 제물인 염소에게 전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16:21).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광활한 광야에 보내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하였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16:22).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광야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 했다.

 

속죄제를 드린 후에 아론은 세마포 옷을 벗고 거룩한 곳에서 몸을 물로 씻었다. 그리고,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였다.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16:24). 번제는 수양의 제물로 드렸으며, 희생 제물 중에 가죽을 제외한 전체를 불에 태워야 했다. 아론은 수양으로 번제를 드린 후에 속죄제 희생의 기름을 단에 태우고 속죄제물의 가죽과 고기와 똥을 진 밖에서 불살랐다. 속죄제의 피가 성소에 뿌려지면 희생 제물의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 밖에서 태워져야 했다(4:11.12). 속죄제를 진 밖에서 불사른 자와 광야로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보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에 들어올 수 있었다.

 

속죄일에 백성들도 의식에 참여해야 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16:29).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은 금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속죄일에는 백성들이 금식하며 스스로 겸손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받는 자의 자세를 취해야 했던 것이다. 속죄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용서받아 정결하게 되는 날이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16:30).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성소를 속죄하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죄에서 속죄받아 하나님 앞에 다시 정결하게 되는 소중한 날이었다.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16:33).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하여 중보하는 자가 대제사장이었다 (16:33). 속죄일은 일년에 한번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속죄하는 날로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였다.

 

3. 속죄일과 예수 그리스도

 

속죄일의 목적은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성막을 부정으로부터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속죄일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는 중보자인 대제사장, 희생 제물, 그리고 피로서 정결하게 되는 성소였다.

 

첫째,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중보자로 지성소에 들어갔다. 대제사장인 아론은 중보자로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에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를 위하여 먼저 속죄해야 했다. 자신의 죄를 속죄한 후에 백성들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다 (16:11,15).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이 둘째 장막인 지성소에 자기와 백성들의 허물을 위하여 피를 뿌렸다고 증거한다 (9:7).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은 중보자로서 부정한 이스라엘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짐승의 피로써 속죄하는 역할을 하였다 (16:32-3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4:14).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인하여 믿는 자녀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날마다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악이나 더러움이 없으셔서 자신을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다 (8:26-27).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둘째 속죄일에는 희생 제물의 피로써 속죄할 수 있었다. 속죄제의 목적은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처인 성소를 정결하게 하고, 이스라엘의 죄를 희생 제물의 피로써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제사장은 먼저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림으로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다. 속죄소에 뿌려진 희생 제물의 피는 이스라엘을 부정에서 정결하게 하였다. 속죄일에 희생된 수송아지와 염소는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아론이 짐승의 피로 백성의 죄를 속죄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하늘에 성소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9:12).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일에 희생된 희생 제물과 같이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믿는 모든 자도 단번에 거룩함을 얻게 되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0:10). 속죄소에 뿌려진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을 상징한다. 아사셀을 위한 산 염소는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어졌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16:22). 아사셀을 염소는 이스라엘의 불의를 지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광야로 보냈다. 이는 우리의 죄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시편 기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짐을 지시고 우리에게서 옮기셨기 때문이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03:12).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 당하는 종인 메시야가 우리의 죄악을 지시고 죽음에 이를 것을 예언하였다 (53:5-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시고 피를 흘리셔서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 침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라고 하심으로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지시고 가시는 희생양으로 묘사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로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진 밖에서 불사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했다 (13:11-12). 이는 대제사장이 속죄제의 염소의 피로 지성소의 속죄소에 뿌리고, 산 염소는 백성의 죄를 지고 광야에 이르렀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10:19-20).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휘장을 지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로 인도하셨다. 휘장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휘장이 갈라져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이 사라지게 되었다.

 

세째, 속죄일에 뿌려진 희생 제물의 피는 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6:16).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성이다. 거룩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는 이스라엘이 부정에서 떠나야 하며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성막이 정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그 부정한 중에서 나답이나 아비후와 같이 죽음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는 거룩해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 (고전 6: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거듭났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고후 6:16).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정결해야 한다. 우리의 정결은 세상에서 나오며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고후 6:17). , 세상의 더러운 죄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신의 피로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거룩한 영에 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성전이듯이,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우리는 육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인식하고 세상의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고후 7:1).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황소의 피가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했다면,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죽은 행실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강조한다 (9:13-14).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더러운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의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거하게 하심으로 성소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셨다.

 

속죄일의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중보자가 되셨다. 그리고, 그 분은 자신의 피를 드려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기에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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