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2) - 복음이 가져오는 새로운 삶(롬 1:5-7)

비전의 사람 2020. 5. 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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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2) - 복음이 가져오는 새로운 삶(1:5-7)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1:5-6).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위대한 복음으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셨고 더 나아가 우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이 변화된 이유는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주가 되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음을 확증하며 그의 종 됨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가져다 주는 은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가져다 주는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1:5).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가져다 줍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1:5).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원수 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5:2).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을 모든 믿는 자에게 주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헤세드인 인자한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사랑하신고로 그 후손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4:3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구속하시고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압제의 땅에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얻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향한 효성은 인자한 사랑이었습니다. 룻은 나오미를 섬기기 위하여 밭에서 이삭을 주우며 공양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룻이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넉넉하게 줍도록 배려했고, 자신의 식탁에서 배부르게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나오미의 밭을 위하여 값을 치루었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룻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한 보아스는 값을 치루어 회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을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녀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배우는 자녀가 됩니다.

 

2. 복음은 우리를 복음의 사명자가 되게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0-11).

 

의미있는 삶은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 길을 달려가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0-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부활을 주시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영광스러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사도 바울은 어떠한 고난이 찾아와도 견디며 마지막까지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그의 믿음은 주님께서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다는 분명한 소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1:5).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사도의 헬라어는 πστολος 로서 출행하기 위하여 준비된 배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대사나 메신저로서의 의미를 각제 됩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에 대한 엄격한 규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르신 자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사도는 일반적으로 열두 제자를 의미했지만,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바나바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도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사도라 칭함을 얻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의 직분에 대하여 고린도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됨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자신은 교회를 핍박한 자로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할 수 없지만, 자신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는 것이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영광스러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통하여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복음 전도의 직무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복음 전도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 주신 전도의 사명은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우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받고 난 이후에는 목적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복음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을 알게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1:5)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받은 자의 푯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맡은 자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1:5)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사도의 직분을 받은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하도록 힘써 섬기는 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거룩한 직분입니다. 성막에서 제사장들의 섬김이 자신들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말씀대롤 섬겼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이 맡기신 사명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20-21).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사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면 자신의 죽임까지도 유익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했고 그 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3:7-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주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셨기에 우리는 직분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은 종의 신분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43:7)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목적이 바뀌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목적이 되는 삶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에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주님을 위한 삶이며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4. 복음은 우리에게 순종의 믿음을 가르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1:5).

 

사도 바울은 사도의 직분이 모든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순종하게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1:5). ‘믿어 순종케 하나니는 믿음으로 나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믿음을 가진 자는 순종하는 삶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16:26).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하나님을 떠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죄의 본질은 불순종이지만 믿음의 본질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복음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믿는 것은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복음을 복중치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8). 복음을 믿는 것은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순종하는 삶으로의 여정으로 인도되어집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한 것은 순종치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3:19).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증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온전히 순종함으로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공회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를 듣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 ...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4:19)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믿었기에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고 난 후에 침례에 순종합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9:18). 사도 바울은 침례를 받은 후에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9:19-20).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로 즉시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지상 명령대로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전도의 삶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구원받은 이후에 일어나는 삶의 변화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이후에 자신의 구원을 공적으로 증거하는 침례의 순종과,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의 삶에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28:18-20). 또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최고 계명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순종의 삶은 우리가 진정 주님을 따르는 제자됨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묵상하는 삶을 통하여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5. 복음은 우리를 특별한 존재가 되게 합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1:6).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방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도록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1:6).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은 입은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피 값으로 사셔서 그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회중(called out assembly)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듯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1:7).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성도로 부르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뜻은 거룩하게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심과 같이, 로마에 있는 성도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14: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성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의미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하여 깨끗한 그릇으로 예비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구별된 것이었습니다. 성막이 기름과 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게 하였고, 대제사장과 제사장도 피와 기름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구별된 자들로 삼았습니다. 구별되지 않은 자들이 성막에 들어가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만민 중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5-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성막이나 제사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소유된 자녀와 백성이 되게 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특별한 지위와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고,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전파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탁월한 지위와 은혜를 감사하며 더욱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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