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5)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롬 1:18-32).

비전의 사람 2020. 6. 10. 16:51
반응형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좇아 나타나나니.”(1:18).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6절에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전가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1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인류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근본 문제인 죄의 본질과 그 결과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18절에서 320절 까지는 온 세상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재판을 하면 판사가 있고 검사와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고가 있습니다. 검사의 역할은 피고의 죄에 대하여 증거를 제시하며 어떠한 형벌을 받아야 할 지를 요구합니다. 이때 변호사는 피고의 죄에 대하여 변호하며 무죄를 주장하거나 감형을 요구합니다.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변증을 들은 후에 최종 판결을 내립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복음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전에 인간의 죄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인류에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그 복음은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능력으로 역사될 수 없습니다. 듣는 자가 절실하게 복음의 필요를 느끼며 간절함으로 받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기 전에 온 인류가 죄인임을 증명하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3:19).

 

오늘 우리는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죄악이 가득한 사람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1. 하나님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에 대하여는 진노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진노는 헬라어로 오르게 ργ입니다. 오르게는 죄에 대하여 순간적으로 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큰 댐에 물이 쌓여가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자신에게 불러오는 것입니다.이에 대하여 로마서 2장은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사르리니 그것을 끌지가 없으리라.”(4:4). 하나님의 분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죄로 인하여 불 같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분노를 바벨론 나라를 통해서 표현하셨습니다. 먼 땅에서 온 나라는 독수리보다 빠르게 찾아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부른 것은 이스라엘의 악함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4:18). 이스라엘의 회개하지 않는 죄는 악이 되어 그들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고, 그 생각은 우상 숭배와 성적 타락, 그리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악한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어떻게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는가요? 하나님의 진노는 과거에 하늘에서 좇아 났고 현재에도 이 진노는 나타나고 있으며 미래에는 최종적으로 심판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성경의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했고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죄가 관영한 세상에 홍수의 심판으로 임하였습니다.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는 의로운 노아와 그의 가족들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뜻에 불복하는 바로와 애굽에 열가지 재앙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할 때에 나타나 삼천명이 레위 사람의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진멸하시려는 생각까지 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와 같이 회개하지 않는 유다에 대하여 나타나 바벨론 제국을 통하여 임하였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진노가 크게 나타는 것은 십자가에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인류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아들이라도 인류의 죄로 인하여 고통과 죽음을 당해야 한다면, 아들까지 거절한 인류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꺼지지 않는 유황불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고 했습니다(1:18).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막는 것은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죄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보다는 죄 가운데 살아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기에 경건치 않음과 불의로 살아갑니다. 모든 죄의 본성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경건치 않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이며 불의는 자신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죄를 범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대체로 우상을 찾아 숭배하며 그 결과는 자신을 더러움에 던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불의를 행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악에 대하여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7:9-10). 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을 행하였고, 예배에서는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는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가증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나타나셨습니다.

 

2. 경건치 않은 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1:25).

 

사람들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단계까지 죄가 발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욕으로 여깁니다. “ ...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6:10).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우상으로 바꾸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분노에 사람들이 핑계치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피조물을 통하여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1: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사람에게 보이셨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이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별 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자신과 섭리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과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일반 계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자연을 통하여 자신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자신을 피조물에 분명히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1:20).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피조물에 분명히 보이셨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창조의 질서와 섭리를 통하여 온 세상이 우연이 아니라, 창조자에 의하여 생겨났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과 같은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비과학적인 과학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속으로는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였습니다. 죄인의 속성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에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마음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에 도전하는 반역이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11:4).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온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우상숭배의 어미가 되어 니므롯과 같은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17:5). 가증한 우상 숭배의 어미가 바벨론이었습니다. 바벨론의 가증한 우상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3).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고 마음이 어두워졌기에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미련한 자가 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며.”(8:7-8).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양이나 염소, 그리고 공주의 새와 바다의 고기들을 다스리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숭배함으로 자신들을 짐승이나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하락시켰습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지혜있다고 하나 우준하게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어리석음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왕들을 신으로 숭배했고 달을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이슈타르와 같은 여신을 숭배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영향으로 애굽은 태양을 신으로 숭배했고 온갖 종류의 곤충이나 짐승, 그리고 바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가나안에서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신으로 숭배하였는데 그들은 돌과 나무로 만든 신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은 암몬신인 몰렉을 위하여 자신의 자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은 미련하게 되고, 그의 미련은 자식까지 우상에게 태워 죽이는 악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모습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본성상 죄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피조물을 통하여 보이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대신에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악이 사탄의 종이 되게 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자 하는 인간의 악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경건하지 않는 모습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진노를 내리십니다.

 

3. 불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더럽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1:24).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을 떠나면 행복이 가득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며 자신들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거짓을 믿었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서로 원망과 미움이 가득했고 형제간의 시기로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노아 시대에 이르러 죄악이 관영했고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육체적인 쾌락을 위하여 성적인 타락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 악을 행하도록 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두 가지의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에 대하여 저들을 더러움에 내어 버리십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1:2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1:25).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길 때에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는 성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여신을 숭배할 때에 사제들과 음행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음행에 대하여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3:6,9)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바알 숭배는 여사제와의 성적 음행이 동반되었습니다. 돌과 나무는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간음은 육체적인 간음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피조물을 숭배하는 불경건에 대하여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여 성적인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들이 성적인 타락을 하도록 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 죄가 차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성적인 타락은 하나님의 질서를 떠난 동성애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6-27).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버려두신 후에, 이제는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자와 여자가 순리대로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여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이 성적인 타락으로 더러워진 이후에 동생애로 인하여 부끄러운 일을 행하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이 내리신 유황불로 멸망당했듯이, 성적인 타락과 동성애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심으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상실한 마음이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무가치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그 사람의 마음은 가치가 없는 거짓 것을 품고 있기에, 거짓 된 일을 하도록 허용하십니다. 그러나 그의 무가치함은 그 죄가 차게 되는 날 하나님의 진노를 만나야 합니다. 다윗에게 함부로 대했던 나발에 대하여 그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불량한 자라고 했습니다(삼상 25:17). 하나님이 불량한 자라고 한 나발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고 자신을 보호해준 다윗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의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에는 상실한 마음인 거짓되고 가치없는 것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않은 일들을 행하는데 그러한 일들은 불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오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하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1:29-32).

 

불의는 의롭지 않은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죄의 목록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추악은 쾌락을 추구하려는 악한 행위입니다. 탐욕은 욕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골로새서는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악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의도적인 불의입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하여 질투하는 것입니다. 탐욕은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이라면, 시기는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품는 죄악인 것입니다.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조차도 살인으로 보셨습니다(5:21-22). 분쟁은 불화하거나 말다툼하는 것이고, 사기는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악독은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며 해하려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수군수군은 비밀리에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을 하는 것이고, 비방은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란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능욕하는 자는 거만한 자로서 하나님께 반역하게 하는 자존감을 가진 자입니다. 교만한 자는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낮게 보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자랑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칭찬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악한 일을 만들어 내는 자들이고,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부모를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자입니다. 우매한 자는 이해력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며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입니다. 배약하는 자는 신뢰를 저버리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압살롬과 같이 신뢰를 깨고 반역하는 모습입니다. 무정한 자는 하나님이 주신 애정을 버리는 것으로 고의로 낙태를 하거나 자녀를 버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또는 가정을 버리는 가장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지비한 자는 자비가 없는 모습으로 냉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선택하면서 온갖 죄악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희들을 성적 더러움에 버려두사 거짓 것으로 욕망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쾌락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운 정욕에 빠져 동성애외 죄를 짓도록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자 하나님은 상실한 마음인 거짓과 무가치한 마음을 갖게 하심으로 온갖 죄악된 행위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들의 완고함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진노를 쌓게 하는 것입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이러한 진노의 날이 있기에 사람들은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노의 날에 피할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