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48) 제자가 배워야 할 영적 가치(마 16:21-28).

비전의 사람 2020. 5. 22. 15:43

마태복음 강해(48) 제자가 배워야 할 영적 가치(16:21-2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대중적인 사역을 하시기도 하셨지만, 한편으로는 주님이 떠나신 이후에 사역을 이어갈 사람들을 부르셔서 가르치시며 훈련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랐던 열두 명의 사람을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도라고 부르기도 하고, 따르는 자라는 의미로 제자라고 부르시고 합니다. 사도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의 의미로 쓰였고, 주님이 사역하실 때에는 주님으로부터 배우는 자로서 마테네스(μαθητς)라는 제자라고 불렸습니다.

 

주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는 고백을 통하여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는 곳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3:10).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는 곳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주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사탄이 교회를 무너트리기 위하여 공격하지만 교회는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며 승리할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은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지키는 제자들이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대한 비전을 말씀하신 후부터 교회의 일꾼으로 섬길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훈련하시는 사역에 집중하셨습니다. 오늘을 주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교훈을 통하여 우리도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어떠한 영적 가치를 가져야 할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1. 제자는 성서적인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어서 예배와 영적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모리아 산이 있는 곳이며, 이곳에 솔로몬이 성전을 세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은 이방인인 헤롯왕이 잔인한 통치를 하고 있었고, 거짓 종교지도자들로 인하여 영적으로 어두운 도성으로 전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에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구인 산헤드린 70인의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장로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고, 대제사장들은 당시 귀족 계급인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로 이루어진 그룹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들이었지만, 주님의 눈에 비친 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위선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온갖 율법으로 백성들의 짐을 무겁게 하였고 주님을 거절하고 심지어 죽이도록 결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로 오셨기에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오시지만, 인류를 위한 구원자로 오시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하여 구약 성경은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편 2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22:14-17).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시편 기자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악한 무리가 예수님의 손과 발을 찔렀고, 채찍으로 살이 떨어져 나가 뼈들이 보이는 고통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모든 뼈가 어그러지고 마음이 고통으로 녹아내리는 모습은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53장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메시야의 고난과 죽으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6-7).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보혈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으신 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시편 16편은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16:10)라고 했습니다. 이는 거룩한 자이신 메시야가 무덤에서 썩지 않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떠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시며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으실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20:18-19).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후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들려 가신 후에 저희들에 의하여 이방인인 로마 사람인 빌라도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지만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 제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2).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주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과 섭리를 말씀으로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통찰력을 배우게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믿음이 자라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이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고 하시자, 베드라가 나서서 주님의 말씀을 가로막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2). 베드로는 주님에게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 일어나지 않을 거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겉으로는 주님을 위한 위로의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거역한 것은 영적인 무지에서 찾아온 것이며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예루살렘에 가셔서 헤롯 왕을 무너트리시고 다윗의 위에 앉으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가 왕이 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구약에서 예언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메시야를 배제하고 왕으로 오셔서 의와 공의로 통치하시는 분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영적인 통찰력이 부족했기에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거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거역에 대하여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16:23).

 

예수님께서는 수제자인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조금 전까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으로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자신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라고 강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책망하셨을까요? 십자가가 없는 영광은 사단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영광을 자신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한 만국과 그 영광을 보며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8-9). 이때 주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고 하셨습니다. 사단이 원한 것은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시고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 모든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이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은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이 사단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 주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범위를 넘어 스승이신 예수님께 도전해 왔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주님이 가시는 길을 막고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따르는 자입니다. 제자로서 베드로는 스승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분이 가시는 길을 따라야 할 자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길을 막이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16:23). 사람의 일이 먼저가 되면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헌신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인 분별력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3. 제자는 십자가와 함께 살아가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

 

주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드러낸 베드로를 강하게 질책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제자됨의 본질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세상의 영광을 위한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은 세베대의 아들들이 십자가가 아닌 영광을 요구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이 영광 중에 오실 때에 자신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10:38)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원했던 것은 주님이 오실 때의 영광이었지만, 주님은 주님이 마시는 잔과 침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받으시는 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하며, 주님이 받으시는 침례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을 뜻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소망해야 할 것은 영광이 아닌 십자가의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께서 제자됨의 본질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 제자됨의 본질이 십자가를 지는 것인 이유는 스승이신 메시야됨의 본질이 십자가의 죽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제자는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마음입니다. 이는 의지적으로 자신을 부인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삶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20). 사도 바울은 자신이 더 이상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자신의 삶을 인도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사는 삶은 항상 주님을 의지하기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잡히시던 날에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잊고,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비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는 노예들이나 흉악범들을 위한 가장 혐오스러운 사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도전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실제적으로 십자가를 진 후에 매달려 죽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신 것처럼, 제자들도 주님을 따르는 순간부터 자신의 목숨까지 내려놓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내려놓는 자는 다시 찾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16:25-26). 자신의 목숨을 얻고자 세상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자는 영생이 얻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려놓는 자는 참된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사람이 자신의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는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내려놓을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보다 더 가치있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초대 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주로 고백하며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당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흘린 순교의 피는 기독교가 성장하는 씨앗이 되었고, 그들이 진 십자가로 인하여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주님의 말씀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4. 제자는 주님의 재림 때에 주실 상급을 소망해야 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6:27-28).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열흘간 사역하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16:27). 주님이 영광으로 천사들과 오시면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 하실 때에 무덤에서 음성을 듣고 부활합니다. 다니엘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2-3)라고 예언했습니다. 주님은 부활한 자 중에 의인들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게 하시며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은 자들은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여 심판의 부활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영광으로 모든 천사에 오는 때에 대하여 예언하셨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25:31-3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섬긴 삶을 격려하시며 영원한 것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14:5)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서 메시야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이 시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한 희생과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은 이유는 주님이 오셔서 모든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우리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와 부활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영혼을 구원하는 기쁜 소식이기에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제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질 때에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매어 어디를 가든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를 위한 고난을 마다 하지 않으며 죽기까지 그 길을 피하지 않는 자가 제자입니다. 제자는 재림때에 주실 상급을 기대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따르며 섬깁니다. 주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때에 영원한 상급으로 격려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