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49) - 변화산이 가르치는 교훈

비전의 사람 2020. 5. 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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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49) - 변화산이 가르치는 교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17:2).

 

마태복음 16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는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는 위대한 비전을 선포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과 올라가신 산에 대하여 카톨릭은 이스르엘 평지에 있는 다볼산이라고 했고, 그곳에 변화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신 곳은 가이사랴 빌빌보로서 갈릴리 북쪽 지역이며, 그 근처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2814m의 헐몬산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언급된 헐몬산은 시편 133편의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134:3)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헐몬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기도하시기 위해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화되셔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변형은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먼 여정을 떠나실 것입니다. 그 길은 무거운 길이며 고통의 길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는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님이 높은 산에 올라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참된 영광을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께는 격려가 되시며, 제자들에게는 앞으로 낮아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영광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임을 확신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신 의미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변화산은 예수님의 본성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17:2).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변형되는 transfiguration 은 형태와 본질에서 완전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외형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산에서 주님은 갑자기 변화되시더니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잠시 동안 원래의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성의 모습으로 변화되셨던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변형에 대하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9:3)라고 했습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이 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진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으로 잠시 변화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2:6-7)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지만, 변화산에서 잠시 주님의 참된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변화산에서 주님의 변화를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라고 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지만, 사도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본 주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며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재림하실 때에 나타내실 것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25:31).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자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시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는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1:13-16).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 종의 형상을 입고 오셨기에 그 분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시고 거절 당하시며 앞으로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변형은 메타모르포(μεταμορφω)로서 전적인 변형(transform)을 의미합니다. 이는 형태와 본질에서의 변화이며, 누에가 변화되어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은 변형을 의미합니다. 메타모르포라는 변형은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양에서 하늘의 영광을 입으신 모습으로의 전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그분의 변화되신 동안에는 사람의 형태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입으신 것입니다. 신약에서 변형이라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는 로마서 122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transformed)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받지 않는 것은 이 세대에 순응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녀라 할지라도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을 본받아 세상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대에 순응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신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받으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변화하신 메타모르포(μεταμορφω)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 우리의 마음의 변화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변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에서 신성의 몸으로 잠시 변화되자, 그 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할 때에 마음이 완전한 변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마음까지도 말씀과 성령으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는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매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transformed)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예수님은 외적으로 변화되셨지만, 우리는 내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는 마음이 완전한 변형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변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주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주님의 몸과 같이 변화되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과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36:26-27). 우리는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고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이 주신 새생명과 말씀, 그리고 성령으로 날마다 새롭게 빚어가는 것입니다.

 

2. 변화산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 지혜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17:3)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후에 모세와 엘리야가 찾아와 말씀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17:4)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을 위한 용서의 길인 희생 제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막에서 희생하는 양과 염소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통하여 가르치고자 한 것은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실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자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예수님과 함께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은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쌔.”(9:31).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 중에 나타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면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대화를 한 것입니다. 별세라는 말은 구약의 출애굽과 같이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죄의 짐을 지시고 죽으실 것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주님은 변화산에서 내려가시면 예루살렘에 가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무거운 길을 가실 주님을 위로하시기 위로하시려고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셔서 힘을 주신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께 주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세 개를 만들 것을 간청합니다.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심히 두려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9:6). 베드로는 갑자기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형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두려움이 찾아왔고 순간적으로 초막을 짓겠다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짓자고 한 것은 초막절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하여 광야나 들에 초막을 지어 일주일간 거주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칠대 절기 중에 마지막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천년왕국 기간에 초막절을 지킬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14:16). 초막절은 메시야가 오셔서 세우실 나라의 상징이었기에, 베드로는 초막을 지어 예수님이 세우실 나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것입니다. 베드로가 초막을 생각한 배경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16:28)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을 것이라고 하시고 엿새가 지난 후에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주님의 변화와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이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시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영적인 눈으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함으로 큰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에 대하여는 부인하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임 당하시는 모습은 자신들의 꿈이 좌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셔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시자, 주님의 길을 막았습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시며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다시한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의 주님을 보면서 초막을 짓고자 했습니다. 산위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참된 영광을 비추신 주님과,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시 주님을 도전합니다. 이곳에 초막을 지을 테니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셔서 무너진 자신의 나라를 회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은 정해진 예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영광으로 오시기 전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속죄의 희생 제물이 되셔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시간이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베드로와 같이 자신의 열정과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열정과 의지대로 하는 것은 실패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입니다.

 

3. 변화산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제자로의 부르심을 보여줍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17:5).

 

베드로가 초막 셋을 주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위하여 짓고자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17:5).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주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7). 요단강에서 침례받으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은 침례요한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한 믿음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화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듣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확신을 직접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8).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거룩한 산인 변화산에서 하늘로서 나는 소리를 직접 들었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말씀을 친히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변화산에서의 사건은 출애굽 당시의 시내산에서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후에 산 정상으로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뢰와 번개와 구름이 산 위에 있게 하셨고 나팔 소리로 임재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산 위의 화염 중에서 말씀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 음성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 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4:12). 하나님께 모세를 부르셔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가르치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했습니다. 신명기 19장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18:15).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신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기뻐하는 자이기에,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두려워하여 엎드린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주님과 함께 변화산에서의 영광을 잠시 잊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고난의 순간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이 고난을 당하여 죽음의 골짜기까지 낮아지시더라도 그 분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이심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7)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양은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양은 주님의 인도를 따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 많은 소리가 들려오지만,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고자 하는 영적인 마음과 귀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변화산에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변화산에서 변형되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변화산에서 주님과 대화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음성으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변화산에서 주시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주님의 본질이신 하나님 되심을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주님이 하시는 말씀고가 가르침을 듣고 있는가요? 듣는다는 것은 집중해서 듣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날과 영광의 주님을 더욱 사모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