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19) - 죄를 이기는 승리의 원천(롬 7:14-25).

비전의 사람 2020. 12. 2. 16:4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로마서 7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서 자유하는 삶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통하여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7:4).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인하여 율법에서 벗어남을 가르치며, 율법의 기능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도 바울은 그러면 율법이 죄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율법은 결코 죄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자신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죄를 깨닫게 하기에, 죄를 깨닫는 자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의를 입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율법의 참된 의미를 모를 때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흠이 없이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자 자신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됨으로 자신은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가 문제이지, 결코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7:12). 사도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했습니다. 두번 째는 선한 율법이 자신에게 사망이 되었는지를 묻습니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7:13). 율법의 선한 것이 사도 바울에게 사망이 되게 한 것은, 율법 자체는 죄를 죄로 드러내어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이기에 그 말씀에 비추면 아무도 의롭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은 마음에 숨겨진 탐심을 드러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는 시체의 썩는 것과 같은 죄가 가득함을 보게 합니다. 선한 율법이 마음에 빛을 비출 때에 어두운 죄가 드러내고, 그 죄로 인하여 자신이 사망에 이른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진리를 깨닫고, 율법의 역할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생명을 얻게 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선한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죄와 싸움하는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의 14절에서 24절 까지의 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 율법 아래 있을 때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이 죄에 대하여 깨달았지만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단계라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육신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서 7장에서의 는 죄와 싸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 71-13절은 과거 시제를 사용했지만, 14절부터는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에서의 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자 하는 갈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는 거듭난 성도에게 나타나는 모습인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를 거듭는 그리스도인이 죄와 싸우며 겪어야 하는 내적 전쟁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거듭난 이후에 말씀과 육신의 정욕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았지만, 그도 구원받은 후에 죄와 싸우며 이겨야 하는 내적 갈등의 시기를 겪으며 성장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주님을 믿고 난 이후에 죄와 싸워야 하는 내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몸의 지체 안에 거하는 죄의 권세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일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7:14).

 

사도 바울은 율법은 신령하다고 했습니다. 신령하다는 것은 영적이 것으로 육신적인 것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영적인 이유는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으로 그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율법이 선하고 영적이지만, 사도 바울은 육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권세에 이끌려 자신의 육신이 죄 아래 팔려 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말씀이 신령한 줄 아지만 육신에 거하는 죄로 인하여 결국 넘어진 자신의 영적 실패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한 것은 죄의 권세 아래에 사로 잡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난 후에 즉시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야곱과 같이 육신적인 단계에서 영적인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육신에 속한 자 같아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다고 했습니다(고전 3:1). 고린도 교회의 육신의 모습은 시기와 분쟁이었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잇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이들은 영적이지 않고 육신적이었기에, 그들 안에서는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육신에 속하여 시기와 질투, 분쟁하는 모습이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간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죄 아래 팔려간 것은 죄의 권세 아래서 무기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본질상 그리스도인은 옛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인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난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었기에 이제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났기에 이제는 자신을 죄가 아니 하나님께 드려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6).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신분이지만, 우리는 아직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죄의 종으로 살아가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순종의 종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 에서 애굽으로 돌아가 바로의 종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애굽의 바로에게서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과거의 삶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 그의 마음에는 세상과 죄에 대한 권세가 남아 있어서 유혹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이지만, 우리는 육신의 사욕이 존재하기에 종종 죄의 권세 아래 잡혀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4:7)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죄가 엎드려 있는 것은 야생동물이 웅크리고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잽싸게 덮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같이 죄는 야생동물과 같이 웅크리고 있다가 기회만 나타나면 우리를 덮쳐서 사로잡으려고 하는 권세입니다. 가인의 문 앞에 엎드려 있던 그 죄는 우리의 몸 안에 살아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날마다 내면에서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7:15).

 

사도 바울은 원함과 행함 사이에서 큰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선함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십계명의 기준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미워하는 그것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미워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3-24). 사도 바울은 마음의 법과 싸우는 다른 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의 법과 싸우는 다른 법은 죄의 법입니다. 사도 바울의 지체 속에 있는 죄가 사도 바울을 사로잡아 오는 강력한 권세를 본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자신은 곤고한 사람으로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자신을 건져 낼 수 있는지를 한탄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종종 경험하는 패배와 절망의 모습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목욕하는 밧세바를 본 후에 그녀와 간음하였고, 그녀의 남편을 전쟁에서 죽게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본 순간 그를 사로잡는 정욕의 권세를 이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죄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의 영적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탄과 그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세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 우리는 사탄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도구는 바로 유혹을 통하여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유혹을 받게 하는 영역은 몸의 지체인 것입니다. 요한일서가 세상에 잇는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한 것처럼, 사탄은 눈으로 유혹을 받아 육신의 정욕을 만족하려 죄를 범하게 합니다(요일 2:16). 그리고 이생에서 자랑하게 하는 교만의 마음을 품게 함으로 세상과 같이 되는 삶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는 것은 율법의 인도가 아니라, 자신의 육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임을 고백합니다. 즉 율법은 선하지만, 그 선한 것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그 문제를 찾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17). 사도 바울은 자신 안에 거주하는 죄가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듭난 자로서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의 육신에 죄가 거하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 죄라고 하는 것은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여 다스리고 주인이 되려하는 권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우리의 지체를 더 이상 부정과 불법에 드리지 말고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했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6:19).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의에게 자신을 종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의 종으로 드리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과정이 내면의 영적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7:20-21).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죄를 짓게 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 안에 거하는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의 원인을 회피하려고 자신 속에 거하는 죄를 지목한 것이 아니라, 죄의 존재가 자신 안에 살아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은 타락한 이후로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9)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타락한 이후로 마음에서부타 가장 부패한 자가 되었기에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본래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생명입니다. 혼은 생각하는 지성과 느끼는 감성과 결정하는 의지입니다. 그리고 몸은 육체로서 영과 혼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로 영은 하나님과 분리하여 사망의 어두움에 이르렀고, 혼은 하나님과 독립하여 사고하고 생각함으로 인하여 삐툴어진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질투와 교만의 죄가 자리잡아 하나님 앞에서 부패한 곳이 된 것입니다. 몸은 거룩한 사랑과 섬김의 지체가 되어야 하지만, 육체의 왜곡된 정욕을 채우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7:23).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하셔서 선을 행하도록 인도하시지만, 우리의 육신에 있는 죄는 우리를 죄의 종으로 다시 삼으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와 싸우도록 하셨습니다. 죄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인격체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암 세포가 있다면 그 암세포를 이기기 위해서 좋은 환경과 영양제와 음식으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듯이, 우리도 영적으로 강건하여서 죄의 권세를 이겨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12: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육신 안에 역사하는 죄와 싸워서 육신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이 공격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탄의 공격을 항상 받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믿음이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하셨듯이,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시며 도우십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마음과 육신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전쟁입니다.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우리는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출발점은 우리 안에 거하는 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7:21).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의 존재를 깊이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4).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존재로 인하여 고통하는 사도 바울의 내면의 세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향인 다소 근처의 한 지역에서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면 그 시신을 살인자의 몸에 묶어 다니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시체의 썩은 살이 살인자의 몸에 붙어 살이 썩어지면서 그 사람도 결국 죽게 하는 비참한 형벌이었습니다. 죄와 함께 살아야 했던 사도 바울은 사망의 몸에서 죄로 인하여 고통하는 자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내면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것은 거듭난 생명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육신으로는 죄를 따르고자 하는 욕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생명과 육신의 사이에서 생명의 삶을 선택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후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육체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혼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때에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이 생명은 바로 영적인 생명으로 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다른 영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변화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영적인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변화되어 갈 때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육체의 사욕을 다르지 말고 의의 병기로 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2-13). 우리는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아야 합니다. 몸의 사욕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죄의 권세입니다. 우리가 몸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에서 벗어나 승리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맺는 영적인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4)라고 탄식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영적으로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죄의 권세가 우리 안에서 역사 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죄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우리 안에서 떠나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서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넉넉히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권세를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