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20) -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롬 8:1-4).

비전의 사람 2021. 2. 3. 19:0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성경의 학자들은 로마서 8장을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장이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스위스의 고대(F. Godet)라는 주석가는 로마서 8장은 정죄함 없음에서 시작하여 끊어지지 않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절들을 위대하다고 했고, 폭스(C.A. Fox)정죄함 없음끊어지지 않음사이에 패배하지 않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슈퍼너라는 독일 주석가는 성경이 반지이고 로마서가 그 반지에 물린 보석이라면 로마서 8장은 보석의 반짝이는 점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역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사역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서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영적 생활을 도우셔서 죄에서 승리하게 하시며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로마서 81절은 정죄함이 없나니.’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절인 39절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 마무리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는 자는 정죄함에서 벗어나는 대신에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의 관계를 누리게 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81절에서 4절 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는 영적 원리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사도 바울은 이제라는 표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7:6)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얽매었던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아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1절은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정죄함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복음을 변증하여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로마서 116절은, “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고 했습니다. 즉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321절은, “그러므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3:21)고 했습니다. 이는 율법 외에 나타는 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1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5: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59절은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5:9)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라는 표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자는 죄가 가져다주는 정죄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죄는 죄인에게 유죄임을 선고하고 형을 집행하는 법정 용어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죄 가운데 죽으면 둘째 사망인 영원한 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서 해방되어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가 범한 죄의 형벌을 대신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얻음으로 정죄함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삯인 둘째 사망에서 이르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정죄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를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2.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는 이유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성령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는 원리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통해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에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성령이 주시는 새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담 안에서 살던 죄인은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형벌의 길에서 벗어 날 수 없지만, 죄인 되었던 옛 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3:5-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63)고 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라는 의미는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It is the Spirit who gives life).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의와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모습에 대하여 골로새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13-14).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둠의 나라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셔서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의 나라인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나라의 통치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북한 주민들이 탈북을 하여 자유의 나라로 이주합니다. 그들이 북한의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대한민국의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대한민국의 법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인하여 죄에게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합된 생명을 가지고 있듯이,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몸이 지체임을 통하여 연합된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도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6). 머리와 몸이 서로 연결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영적으로 서로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으로 서로 연합되었듯이, 그리스도와 교회는 서로 연합된 한 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32). 이와같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는 것으로 영적 생활이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면서 영적 여정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속죄제의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우리가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함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율법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질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의롭지만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를 범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를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정죄가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죄의 속박이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육신이 있어서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죄의 유혹에 자주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7:5). 육신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며 받는 죄의 정욕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죄의 정욕으로 인하여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합니다. 율법은 죄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고 도리어 죄의 정욕이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십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하나님은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시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의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의미는,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신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수 있는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심으로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죄를 속죄하는 어린양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정죄받지 않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양이 되게 하신 목적은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인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는 예수님께서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형벌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칭의의 구원을 성취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셔서 육신으로 살지 않고 성령으로 살게 하십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영을 좇는 다는 것은 성령안에서 걸어간다는 의미로 매일의 삶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의롭게 된 자는 이제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율법의 요구인 의의 삶을 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36:26-27).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육신의 강팎한 마음이 사라지고 새로운 마음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성령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가치가 주는 육신의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순종하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삶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성화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인도하시며 변화시키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의 짐을 지시고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심으로 정죄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주님을 더욱 닮아가야 합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칭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을 닮아가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칭의는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성화는 평생동안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