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30) -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롬 9:6-13).

비전의 사람 2021. 5. 5. 18: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과 약속,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이 있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서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나신 것은 그들이 받은 약속의 성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영적인 특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에 사도 바울은 마음에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이스라엘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오랫동안 메시야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야를 거절하였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다수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가 세워질 때에 다수의 구성원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근심하게 하였고, 심지어는 혼돈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이 실패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실하지 않는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실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는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폐하여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지지 않았음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구약에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만이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야를 거부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모두가 영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 이는 아브라함에게서 난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의 후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 분을 나타내셨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이러한 영적인 특권을 가진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영적인 유산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약속하신 메시야를 영접해야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기에 믿음이 없이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이스라엘이 누구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9:6)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한 이유는, 구원이란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이스라엘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육적인 혈통으로 연결된 육적 이스라엘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영적 이스라엘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2:23). 유대인들이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자랑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참된 이스라엘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처럼, 행위나 혈통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비결인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과 육적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하여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7-8). 아브라함의 씨라도 다 자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적인 축복이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 칭함을 받는 후손에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는 육신의 자녀와 영적인 자녀 혹은 약속의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는 이삭이며, 육적 자녀는 바로 이스마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고, 아내인 사라에게서 난 이삭은 약속으로 낳았다고 했습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4:22-23).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신 것을 언급합니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9:9).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난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신실하셔서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고 사라가 구십세가 되었을 때에 기적적인 역사를 따라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약속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인 것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는 믿음으로 난 자로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이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셔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가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이라고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8:44). 이와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영적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약속의 메시야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이스마엘과 같이 육적인 혈통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모두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 중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받은 자만이 참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모태신앙이 구원의 증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침례를 받은 것이 구원의 증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참된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사람과 구별되었듯이, 교회 안에서도 교인과 성도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받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그 분의 뜻대로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9:10).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수많은 셈의 후손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큼 의롭거나 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데라의 아버지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였기에, 아브라함도 우상의 영향력하에 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로 뜻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종에게서 난 아들이었기에 육적인 아들이었지만, 이삭은 약속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출생하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리브가가 나은 에서와 야곱을 비유로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할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10-13).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 야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에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된 것입니다. 창세기 25장에서 리브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5:23).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태중에 두 민족이 있을 것이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이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섬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은 말라기 12,3절의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셔서 그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지만, 에서와 그의 후손인 에돔은 거친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921절에서 하나님은 토기장이이며 우리는 진흙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한 쓰는 그릇으로, 하나는 천히 쓰는 그릇으로 만들게 됩니다.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에서 다른 그릇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토기장이의 뜻인 것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향하여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원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9:20)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로서의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아브라함을 구별하셔서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시며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세우시고 느부갓네살 왕에게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바사의 고레스 왕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오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흥왕케 하시고, 그 후에 바사 제국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103: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그 분의 보좌를 세우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민국을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신 것에 대하여 원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운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초청에 응하여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관계에서도 에서는 장자권을 파는 행위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과 은혜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얻도록 복음을 듣게 하시고 은혜로 구원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만 설명되어질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33:29).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행복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그 분의 함께하시는 은혜로 우리가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