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32) - 하나님의 의와 자기 의(롬 10:1-4).

비전의 사람 2021. 5. 19. 16:41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

 

사도 바울은 골육의 친척인 유대인의 구원에 대한 깊은 열망을 가지고 로마서 9장에서 11장 까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9:3)라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자신은 지옥에 갈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0장을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10:1)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의를 깨달아 구원을 얻기를 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을 염려하며 기도했던 이유는, 다수의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10:2).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길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지 않고, 율법에 근거한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했기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3). 그들의 문제에 대하여 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9:32)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거절하고, 행위에 의지했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와 충돌이 일어나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는 믿음에서 난 의와 행위에 의지하는 자기 의를 배우며,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가 무엇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1.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은 자기 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10:2).

 

유대인들은 열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건한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는 사울이 구원받기 전의 모습과 같이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3:6)의 삶을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와 자기 의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3).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다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1:17).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행하는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시도했습니다. , 자신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는 율법 외에 다른 하나님의 의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위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3:21). 율법 외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칭의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를 누리는 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쓴 것은 율법의 행위에 기초한 의를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며 순종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매여서 자신의 의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를 이렇게 분명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의를 세워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노력은 잘못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뜻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침이라는 뜻은 헬라어로 텔로스 라는 말로서 마침(termination, cessation), 또는 목적(goal)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는 율법의 종착지 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율법이 향하는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하나님의 의가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 역할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의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자 율법은 그 효력을 상실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신 분으로서 모든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오실 메시야를 믿어야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과 선지자가 바라보게 하는 것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이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며, 자신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5:39-40).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오기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이 진정으로 가르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얻는 것임을 알 때에,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것에 대하여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는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기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5: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의를 성취하심으로 완전케 하셨습니다. 둘째 우리는 율법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입니다. 특히 구약은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배움으로 인하여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아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준비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말씀인 모세 오경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은, 율법을 통하여 구원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교훈을 얻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5).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조건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했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소멸되어야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세가 기록한 말씀으로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5). 이는 레위기 185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18:5). 이는 모세의 율법을 모두 지키면, 그로 인하여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 요구하는 것을 모두 지키게 하는 힘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의 의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는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진정으로 율법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변질시켜서, 도리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10:5-7).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신명기 3012절에서 1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멋 것도 아니라 ...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30:11-14)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알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그 명령을 가져오거나,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가져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운데 있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입과 마음에 있어서 이를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는 하늘에 올라가서 모셔 내리거나, 음부에 내려가서 모셔 올리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기에,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의롭게 될수 있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길은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는 길인 믿음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주는 구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아도나이로 바꾸어 주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을 마음에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그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을 마음에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니리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1-12)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대상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부르신 그들을 부요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시작하셨지만, 이제는 구원의 역사가 모든 민족에게 이르게 하심으로 그들이 모두가 부유함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에서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혈통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복을 누립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의 길이 높은 하늘이나 깊은 바다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되었기에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부요하게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