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73) -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마 23:29-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그들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있을 일곱 번째 화의 모습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천국 문을 닫았기 때문에 화가 있을 것이며,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성전으로 맹세하며 무효지만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함으로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십일조를 드리지만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을 버렸기 때문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화를 받는 마지막 이유는 조상들과 같이 선지자들을 죽임으로 무고한 피를 흘리기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 구원받을 기회를 얻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엄중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바리새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에 대하여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 바리새인들은 마음과 행동이 다른 위선을 행했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마 23:29-30).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세우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나 의인들과 같은 영웅들의 무덤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헤롯 대왕이 자신의 왕권의 정통성을 드러내고자 다윗의 무덤과 기념비를 세우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따라 하면서 자신들의 경건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습니다. 특히 그들이 무덤과 비석을 새롭게 치장한 것은 조상들이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의인들을 핍박한 죄를 용서받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면서 자신들이 조상의 때에 살았다면, 그들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선지자들의 무덤을 새롭게 세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보인 그들의 문제는 위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죄에 대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대신 무덤이라도 잘 만들어 백성들의 눈에 자신들의 행위가 선하게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마 23:30)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을 만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들이 조상의 때에 살았더라면, 그들이 선지자를 죽이는 일에는 절대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이미 조상들과 같은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침례 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에 그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침례요한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바리새인들은 침례요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으며 그를 선지자인줄 알면서도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성전에서 진리를 선포하시자, 그 분을 모함에 빠트려 죽이려는 계획을 품었고 그 후에 주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자 그들은 스데반의 메시지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지만, 그들은 돌을 던져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조상들의 죄에 회개하는 마음은 없었고, 도리어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경건을 드러내기 위한 외식 행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사람을 사랑하는 율법의 참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덤과 비석을 새로 만들어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약 사백년 전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었다는 소식을 페르시아의 궁에서 들었습니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며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느 1:6-7). 느헤미야는 조상들이 범죄하여 하나님께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찾아왔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자신과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무덤이나 비석을 세우기 보다는, 느헤미야와 같이 참된 회개의 마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이 회개했다면 그들은 침례 요한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 들였을 것이고, 그의 메시지를 받은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우리의 행동은 그들과 같은 모습을 갖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먼저는 마음을 겸손히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2. 바리새인들은 지옥의 판결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마 23:31-3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것은 자신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그들 조상의 양을 채우라고 질책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이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며 조상의 양을 채우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이란 영적으로 마귀의 자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아비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마귀이기에 마귀가 행하는 살인과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영적 자부심을 가지고 육체의 혈통을 의지함으로 구원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이었습니다. 선지자를 죽인 자는 누구인가요? 그들은 왕이나 방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던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선지자를 죽인 왕들의 배후에는 사탄의 권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사탄의 자녀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질책하셨습니다. 그들은 뱀의 후손들로서 사탄의 영적 후손들이었습니다. 사탄의 후손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지옥의 심판이기에, 그들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을 통하여 사탄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후손들은 아담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원수를 맺으며 살아갔습니다. 그 후손들은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적대감을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일을 반복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행할 죄를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저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마 23:34). 바리새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후손들은 말하기를 만일 자신들이 그 때에 살았더라면 그러한 일에 동참하지 않았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거짓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앞으로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면, 그들도 동일하게 예수님이 보내신 사람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며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려고 로마 군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채찍질하여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의 회당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대소사를 처리하는 지역 공의회 역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당에서 채찍질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조상들과 같이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핍박하여 죽이는 의로운 피에 대하여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마 23:35-36). 예수님께서는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주님은 그들이 흘린 피가 그들의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벨은 가인으로부터 살해당한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없는 아벨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피를 흘린 하나님의 사람은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를 그들이 죽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과거에 사가랴를 죽인 자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역대하 24장 15절에서 22절은 요아스왕이 스가랴를 성전의 뜰 안에서 죽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폐하고 요사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여호야다는 이스라엘에 영적인 개혁을 통하여 바알 산당을 훼파하고 바알의 제사장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요아스 왕을 잘 보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여 성전을 고치며 예배를 회복하도록 했습니다. 그후에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왕이 하나님을 떠나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에 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을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사람들을 충동하여 성전의 뜰 안에서 돌로 쳐 죽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아스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역하 24:22). 요아스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여호야다의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 후에 요아스는 그의 신하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떠난 영적인 어두움에 거해야 했습니다. 요아스도 스가랴를 죽인 죄로 인하여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에 신하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그들의 조상들과 같은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넘겨줄 것입니다. 이때 군중들이 이렇게 빌라도에게 외칩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마 27:25).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자신과 자신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자의 피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면 그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에 가서 보호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한 피를 요구했고, 그 피를 자신들이 받겠다는 엄청난 요구를 했습니다. 그들의 죄를 주님은 아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아들을 죽인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린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시사 가인에게 저주를 부으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저들의 죄를 용서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그들이 흘린 의로운 피가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에는 그 대가가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한 자들의 대가는 바로 뜨거운 지옥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도 동일하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3.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로 소망을 두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시면서, 그 분이 선언한 화는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미래에 소망을 주시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평안과 소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앞에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5-16).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거나 죽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선한 왕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선대했지만, 악한 왕들은 선지자들을 가두거나 죽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애가를 부르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돌로 쳤고, 이사야 선지자는 톱으로 켜서 죽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모으려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성전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육백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따시 메시야를 거부하고 그가 파송한 제자들을 돌로 던지고 죽이는 일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4:38).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이 십자가 사건이 있은지 40년이 지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전을 황폐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성전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9).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할 때는 예수님께서 왕 중의 왕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입니다. 에스겔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의 동편으로 떠나신 후에 동편으로 다시 오시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동편인 감람산으로 떠나신 후에 재림하실 때도 감람산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백성들과 함께 영원한 나라인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주신 것은 그들에게 회개하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향하여 부르시는 모습을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롬 10:21). 왜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종일 손을 벌리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삶을 돌아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초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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