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33) -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롬 10:11-21).

비전의 사람 2021. 5. 26. 18:52

로마서(33) -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10:11-21).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5).

 

사도 바울이 전하는 믿음의 말씀은 복음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믿는 자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라고 했습니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얻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위해서는 그들은 먼저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얻는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1.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입니다(10:11-13).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10:11).

 

로마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1-13).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자신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구약에 있는 말씀에서도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구약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사야는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하나님께서 시온에 두신 견고한 기초 돌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급절하게 되지 않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즉 견고한 기초 돌을 믿는 자는 평안히 거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견고한 기초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10:11)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의 날에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를 강조함으로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하지 않고 부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2). 주님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주되시는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시고 부요하게 하십니다. 부요함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1:7).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풍성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부요한 은혜는 죄사함을 받는 것이며,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영적인 부요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의미는 구원받기 위하여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여! 주여!” 라고 외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구원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요엘 232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2:32).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여 심판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며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의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야 합니다(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0:14).

 

사도 바울은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듣지 못했다면 어찌 믿을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어찌 전파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5).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면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52:7). 평화와 구원의 선포를 가져오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의 발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보내셔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라고 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믿지 않는 자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셨기에 세상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을 들음으로 세상은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되고, 결국 들음으로 인하여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고 결국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추수할 일군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9:37-38). 주님은 무리를 보시고 긍휼이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복음 전도자들이 세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10:16-21).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0:16).

 

사도 바울은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0:16).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 53장의 1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여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고 반문하며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한탄했듯이,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이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에 기초하며 의를 얻으려고 함으로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인데, 더욱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첫째는 그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물론 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복음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10:18). 사도 바울은 시편 19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셨듯이, 이제는 복음의 말씀이 온 세상에 전파됨으로 그들이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복음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그들은 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10:19). 사도 바울은 모세가 선포한 신명기 3221절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이 아닌 자로써 그들을 시기하게 하며 노엽게 하리라고 말씀을 인용하며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있을 것을 변증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 아닌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시기나게 하고 노엽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받은 구원을 유대인들이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복음을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핑계일 뿐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도리어 하나님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게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10:20). 사도 바울은 이사야 651-2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9장의 30-31절의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은 행위에 기초한 율법을 따랐기에 하나님께 돌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얻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복음을 듣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은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백성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종일 손을 벌리며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10:21).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순종할 때에 구원의 은혜에 이르게 되듯이, 날마다의 삶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