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34)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롬 11:1-10).

비전의 사람 2021. 6. 9. 16:58

로마서(34)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11:1-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1:1).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결국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하실 사람을 남은 자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9:27)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의 의미는 여러 의미를 갖곤 합니다. 남은 자는 큰 재앙에서 살아 남은 자를 표현하기도 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지 않고 이스라엘에 남은 자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합 시대에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람을 남은 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을 남은 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사야는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10:21-22).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은 자의 구원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에 대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신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을 통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1:1).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를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로마서 1126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은 증거로 자신의 구원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1:1). 사도바울은 자신의 구원을 간증으로 들면서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정통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구원은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6). 사도 바울의 구원이 모든 믿는 자의 (pattern)이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사도 바울의 구원은 우리의 구원과는 다른 경험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하늘에서 빛이 비추고 영광 중에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비추시는 빛과 음성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상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재림하실 때에 강팎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그 분을 바라보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2:10, 13:1).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입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14:4). 이스라엘 민족은 감람산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회개하고 그 분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다소 사람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주님이 비추시는 빛을 보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고 구원받은 것과 유사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음을 증거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구원의 경험이 그리스도가 지상 재림하실 때에 유대인들의 구원과 유사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비추시는 빛가 음성을 듣고 구원을 받았듯이,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에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능력을 보고 회개하고 믿게 될 것입니다.

 

2. 엘리야 선지자와 남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11:2).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그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1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증거로 사도 바울은 엘리야 시대의 남은 자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아합왕의 타락으로 인하여 나라 전체가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그러자 이세벨 여왕의 협박을 받은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40 주야를 도망하여 호렙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호렙산의 한 동굴에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열상 19:9)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칼로 선지자들을 죽이고 자신만 믿음의 사람으로 남겨졌다고 했습니다.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열상 19:10). 엘리야 선지자가 자신만 남았고 자신의 생명을 취하려 찾고 있다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바울에게 무릎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상 19:18).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만이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위하여 칠천명을 남기셨다고 하심으로 남은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27절에서 “...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9:27)라는 말씀으로 남은 자가 은혜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육체의 후손과 영적인 후손을 구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들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듯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11:5-6).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9:32).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하고 자신들의 행위로 자신들을 의롭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종교적이며 자신을 의롭다 여기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의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남은 자를 구원하십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남은 자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요?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11:7).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은혜로 구원을 얻지만,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진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바로가 마음을 강팎하게 했듯이, 마음을 강팎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강팎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한 결과로 영적으로 소경이 되고 마음은 강팎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팎하게 된 이스라엘을 이사야 말씀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11:8).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29:10)라는 말씀과 신명기의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29:4)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불순종하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잠들게 하심으로 마음과 눈과 귀가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게 하심으로 심판에 이르게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바로와 같이 마음을 강팎하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진리에 마음을 닫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11:9-10). 이는 시편 6922-2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69:22-23). 밥상이 올무와 덫이 되게 하는 것은 축복이 심판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영적인 축복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께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자신들이 받은 영적인 축복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게 하는 올무가 된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의식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는 덫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의식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종교적인 행위를 더욱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받은 영적인 축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히 누려야 했지만, 자신들의 의와 종교의식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 ...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11:25-26)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완악하게 되었지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얻게 된 후에 이스라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한 계획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행위를 의지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밥상을 이스라엘 백성은 올무와 덫이 되게 함으로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밥상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밥상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하여 그 삶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욱 영적으로 성숙시켜서 올무와 덫이 되지 않도록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