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35) -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롬 11:11-24).

비전의 사람 2021. 6. 16. 17:15

로마서 강해(35) -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11:11-24).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1:16).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는 질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1: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 증거로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구원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항상 믿음의 남은 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계심을 언급했습니다. 즉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 뿐만 아니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명의 사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이 후에 유대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도구가 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방인의 구원이 주는 의미입니다.

 

1.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얻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11:11).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11:11). 이스라엘이 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3). 누군가가 유대인들이 넘어짐으로 실족하였느냐고 하자,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족하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영적인 파산을 의미합니다. 이는 넘어진 유대인들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느냐고 질문한 것이며,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들이 넘어짐은 완전히 실족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넘어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적인 축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됩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구원은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의 시기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그들의 영적 축복을 시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의 구원이 결국은 유대인의 구원으로 연결될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11:12)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 넘어지고 실패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이 거절함으로 인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도리어 영적인 부요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 넘어지더라도 세상의 부요함이 되었는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충만함을 누린다면 세상이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릴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11:12).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 충만하게 될 때에는 얼마나 이방인에게 더욱 큰 은혜가 찾아오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넘어지더라도 세상이 영적인 부요함을 누린다면, 그들이 메시야를 받아 들여 충만하게 된다면 세상은 그들로 인하여 더욱 풍성함이 찾아오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메시야의 나라로 세우셔서 주시는 은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넘어짐은 다시 한번 영적인 충만함에 이르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하게 하는 길은 바로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라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1:13-14).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구원하는 역사로 인하여 유대인을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라도 구원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회복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11:15)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버리심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큰 축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죽은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지막 시대에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후에 부활의 몸으로 주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말론적인 의미로서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의 삶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2. 이방인은 믿음의 뿌리인 유대인에게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1:16).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영적인 관계를 곡식 가루와 나무의 뿌리와 가지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1:16)라고 했습니다. 거룩이란 하나님께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처음 익은 곡식 가루를 드림으로 다른 떡덩이도 거룩하고, 나무의 뿌리가 거룩하기에 그 가지도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의 비유는 민수기 1517-21절의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나의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여호와께 거제를 드리되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찌니라.”(15:17-21).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러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에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즉 추수한 양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나머지 떡덩이도 거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뿌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인 아브라함과 족장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지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와같이 처음 하나님께 드린 곡식 가루와 나무의 뿌리는 그들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족장들이며, 나머지 떡덩이와 가지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된 이유는 그들의 뿌리가 되는 아브라함과 족장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별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영적인 축복에 동참하게 된 것을 나무의 접붙임에 비유했습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꺽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11:17). 유대인들은 참감람 나무의 가지로서 은혜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인하여 가지가 꺽여지듯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꺽여진 곳에 이방인인 우리가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즉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쓸모없던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영적인 축복을 받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비유를 한 것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향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충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1:18).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함으로 인하여 그들을 버리시고 이방인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을 그들을 향하여 유대인들을 향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방인의 가지가 감람 나무에 접붙임으로 인하여 그 나무에서 진액을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나무의 뿌리에서 가지가 양분을 공급받아 살아가듯이, 믿는 이방인들도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되는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계속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누린다는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무시하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 교회에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지체로 섬길 때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교만히 행하지 말것을 권고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3. 이방인은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꺽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함으로 꺽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11:20-21)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이 은혜에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자,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꺽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함으로 꺽이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11:20-21)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꺽이운 것이고,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높은 곳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 가지들인 유대인이라도 아까지 아니하셨다면, 돌감람나무에서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들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까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까지 아니하시리라.”(11:21).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믿음으로 날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값으로 산 것이 아니라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신을 낮추어야 하며 계속해서 믿음으로 은혜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와 엄함을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여 넘어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이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거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11:22). 유대인과 같이 이방인이 믿음에 거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유대인과 같이 찍힌바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믿음으로 돌아오면 저희들도 다시 접붙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돌감람나무의 본성을 거스리고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힘을 얻었습니다. 이와같이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속했던 원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는 것은 더 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서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11:24).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백성을 모두 구원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온 세상의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하여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남은 자들 외에는 모두가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나무에서 뽑힌 가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믿음에 의지함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방인은 참감람나무에 접붙힘을 받아 진액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그 뿌리인 유대인에 대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원래 참감람나무의 가지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기함으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로 돌아와 참감람나무에 다시 심겨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에 감사하며 더욱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