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51) -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롬 16:1-4).

비전의 사람 2021. 12. 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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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51) -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16:1-4).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16:1-2).

 

하나님의 교회에는 일군이 있어서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대제사장, 제사장들, 그리고 레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을 통해서 성전이 거룩해지고 백성들이 가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그 외에도 제사장들은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종으로 섬겼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오직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나 전도사님만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인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집은 영적으로 세워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지체들의 연합이듯이, 영적인 집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돌이 서로 연결함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집에는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교회에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군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직업이나 사업장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일군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오늘 로마서 16장은 로마서의 마지막 장으로서 자신과 함께 동역했던 일군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은 바울의 보호자였던 뵈뵈와 브리스가와 아굴라였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일군으로 섬기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배우는 일군들의 기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선대합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16:1).

 

뵈뵈는 겐그리아 교회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교회에서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는 일군으로 사도 바울의 큰 신뢰를 얻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기룩한 로마서의 서신을 뵈뵈를 통하여 로마 교회에 전달하려고 했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인 뵈뵈를 로마 교회에 추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하여 뵈뵈를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그녀의 필요를 따라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16:2). 사도 바울이 그녀를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고 한 이유는, 당시에 여행자들을 위한 호텔이나 식당 등의 시설이 부족했기에 그 지역의 사람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매 뵈뵈를 로마의 그리스도인에게 추천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을 사역하는 동안에, 12km 떨어진 겐그리아의 교회에서 섬기는 뵈뵈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뵈뵈 자매는 단지 교회의 회원으로 예배만 드리는 자가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섬기는 일군이었습니다. 일군이란 디아코노스는 종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교회에서 그리스도와 지체들을 섬기는 일군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뵈뵈를 성도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영접하라는 것은 교제함으로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녀에게 필요한 숙박과 음식, 기타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뵈뵈를 도와주라고 한 이유는 뵈뵈가 여러 사람과 바울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16:2). 뵈뵈는 겐그리아 지역에서 유력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재정적인 여력은 사도 바울과 그와 함께하는 동역자들을 위한 보호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보호자의 의미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을 할 때에 숙박이나 재정적인 후원을 하면서 도움을 주는 사역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낯선 곳에서 선교 사역을 할 때에 많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당장 숙박해야 할 집이나 음식 그리고 사역과 삶에 필요한 재정적인 후원이 절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때 뵈뵈는 자신의 것을 나누며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의 후견인 역할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뵈뵈와 같은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 초기에는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와서 사역을 시작할 때에 호텔이나 식당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초창기에 구원받은 가정들이 자신들의 집을 선교사님들에게 개방하여 숙박하도록 배려하며 식사로 섬기면서 헌신하였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개척되어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격려를 받곤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가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교회가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했고, 예루살렘에는 마가의 집이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뵈뵈와 같은 성도들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님이 교회를 방문하거나 강사 목사님들이 오실 때에 섬기는 모습이 이와같은 것입니다.

 

저희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패스코에는 김주백 집사님이 자신의 집이나 호텔을 예약하여 숙박과 식사를 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귀한 섬김을 주셨습니다. 이와같은 모습으로 저희들은 큰 격려를 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LA에 가면 세키네 자매님이 계시는데, 저희들이 사역할 때도 항상 격려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지난 번에 그 교회를 방문했을 당시에 그 분의 안방을 일주일간 비우시고 저희들을 위해서 헌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로 섬겨 주시며 저희들을 선대해 주셨습니다. 이와같은 모습에 저희들은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격려하는 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이와 같은 헌신은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사역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뵈뵈와 같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을 선대하는 보호자나 후견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16:3).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서신을 보내는 뵈뵈를 천거한 이후에 로마의 성도들 중에 자신의 동역자 되었던 성도들에게 문안을 보냅니다. 그 중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사람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였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16:3).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아내와 남편으로 이루어진 사역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기간에 고린도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과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18:1-3).

 

브릴스가라와 아굴라는 로마의 형제인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이 로마를 떠나라는 명에 따라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그들을 만나게 되었고 마침 텐트를 만드는 업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거하며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사울 바울을 도와 사역을 하다가,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갈 때에 함께 떠나 에베소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에 브리스가랴와 아굴라는 글라우디오가 죽은 후에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대하여 이렇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16:4).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신이 대신 죽을 수 있을만큼 헌신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아마도 에베소에서 큰 위험이 있을 때에 그들은 사도 바울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대신 고난을 받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업가였기 때문에 자신의 재정적인 여력을 가지고 이방인의 많은 교회들을 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16:5)라고 했습니다. 이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열어서 교회로 모였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을만큼 헌신적이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매주 모일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위하여 함께 헌신하는 믿음의 동역자로 인하여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사역자들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브리스가라와 아굴라와 같이 함께 섬기는 집사님들 가정과 목자님들, 그리고 헌신적인 성도님들로 인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과 같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믿음으로 함께 동역하는 지체들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믿음으로 함께하는 동역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일군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주님의 종으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군들은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믿는 자에게 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역은 변화된 사람들에 의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섬기는 자는 교만하거나 무례한 자가 아니라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말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자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나 리더를 비방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방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교회나 리더를 허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실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군은 세상과 분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도 본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군들은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딤전 3:8-9).

 

집사의 의미는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교회를 통하여 섬기는 자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단정해야 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한입으로 두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입술이 진실한 자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더불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일꾼들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변론을 하다가 다투는 일을 피하는 자입니다. 다투는 일은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마귀로 틈을 타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자들을 향하여 참고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다투고자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온유함으로 참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하셔서 모든 사람을 품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모세도 온유한 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의 길로 40년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자로 쓰임받고자 하면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심령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와 사랑으로 오래 참고 진리를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역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뵈뵈와 같은 자매였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믿음의 부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사람들로 인하여 복음의 진보가 일어났고 교회들이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믿음 안에서 헌신된 동역자들로 인하여 교회가 더욱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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