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92)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마 28:1-10).

비전의 사람 2021. 12. 23. 19:23
반응형

마태복음 강해(92)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28:1-10).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28:6).

 

마태복음 28장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가장 위대한 장명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믿는 믿음의 근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되셨다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했기에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생명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날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서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임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이이로다.”(2:23-24, 31-32).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이 썩임을 당하지 아니하시도록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로서 그 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8장은 다음의 구절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알립니다.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28:1).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오후 6시 까지입니다. 안식일이 마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을 의미합니다. 이 날은 주님이 무덤에 계신지 세번 째 되는 날입니다. 주님은 무덤에서 금요일의 부분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새벽까지 사흘을 무덤에 계셨습니다. 첫날이 되려는 미명은 안식후 첫날인 주일의 해가 뜨는 새벽을 의미합니다.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동행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제자들을 위하여 음식과 필요들을 공급하며 섬기는 사역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흔들림 없이 그 곁에 있었고, 주님이 무덤에 장사되자 그곳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무덤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진실로 주님께 헌신적이었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가 무덤에 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요안나도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24:10). 그들이 간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영혼이 사흘 만에 몸에서 떠난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체가 사흘이 지나면 부패하기 때문에 더 이상 영혼이 그 몸에 있을 수가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신이 사흘이 되어 부패하기 전에 그들은 준비한 향품을 발라 몸의 부패를 최대한 막으려고 했습니다. 이미 니고데모가 백근이나 되는 향품으로 발라 세마포로 몸을 입혔지만, 그들은 다시 한번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주님께 자신들의 마음에 있는 사랑과 헌신을 향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군사들이 지키고 인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덤을 가면서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16:3-4). 그들은 큰 돌을 옮겨줄 사람이 무덤 근처에 있을 것을 기대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돌이 벌써 굴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무덤 근처에 가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삼일동안 지진은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에 지진이 나서 무덤에 자는 자들이 일어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이 무덤에 계신지 사흘이 되는 날에 두번째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지진이 일어난 이유는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28:2-3). 무덤의 돌을 굴려낸 이유는 여인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의 돌이 있어도 그것을 통과할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에 이미 부활하셔서 무덤을 떠나신 이후였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자 그 안에는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따로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의 경험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무덤에 이르자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 달려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음을 알립니다. “...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20:1-2).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음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다른 제자인 요한이 무덤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이때 요한이 빨리 무덤에 도착하게 됩니다. 요한은 소심하여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무덤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무덤안에서 예수님을 쌓던 세마포와 머리를 쌓던 수건이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20:9-10).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덤의 소식을 알리러 간 사이에, 다른 여인은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천사는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었기에 그 모습은 번개와 같고 옷이 눈 같이 흰 하늘에 속한 형상이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본 군사들은 천사를 무서워하며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사들은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에 놀라 거의 기절을 하고 만 것입니다. 물론 여인들도 무서워하고 있었지만 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28:5-6). 천사는 그들에게 너희가 찾는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이는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합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28:6).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에는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놓여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여인들과 제자들이 떠난 후에 두 천사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그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 보니.”(20:11).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 서서 울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가져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천사가 무덤에 혼자 남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었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20:12). 두 천사는 예수님의 시체가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다른 하나는 발 편에 앉았습니다. 이는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두 천사가 날개를 펴고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와같이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가 놓였던 곳에 머리와 발 편에 앉았습니다.

 

천사가 여자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묻자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이 내 주를 가져갔지만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뒤로 돌아서자 예수님이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분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그 분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다시 가져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비로소 그 분이 예수님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20:17). 예수님께서 아직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버지께로 아직 올라가지 못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지라고 하신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소에 가셔서 자신의 피로 속죄를 하셔야 했기 때문이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9:12)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 속죄소에 피를 뿌림으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하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대도 제자들에게 가서 자신이 주님을 보았고 주께서 하신 말씀을 알려 주었습니다.

 

다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급히 무덤을 떠나 베드로와 요한에게 갔던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떠난 후에 무덤에서 천사는 남은 여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려준 후에,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속히 알려 주라고 했습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하거늘.”(28:7). 천사들의 말대로 여자들이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려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행하여 평안하뇨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들이 예수님을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28:10).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자신을 만나도록 그곳으로 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그 후에 성으로 돌아가는 두 여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믿음의 여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부활의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던 위대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경배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베드로나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이 역사하시는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슬픔의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무덤에 장사되실 때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그 순간에도 그들은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주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가져다 주는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는 비결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의 순간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체들이 모여 교제하는 목장 모임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그 순간에 함께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재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현장에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그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확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이요 생명이시기에, 주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고후 4:14)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26:19). 주의 죽은 자들이 노래하고 시체들이 일어나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다니엘은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12:2). 자는 자 중에 많은 사람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지만 수욕을 받아서 멸망을 받을 자도 있을 것입니다. 욥기는 부활한 후에 구속자를 볼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5-26). 자신이 썩은 후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은 부활의 몸인 새 몸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에 대하여 예언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영적 의미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활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구원이 없는 것이며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3-14).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짓 증인으로 별견될 것입니다. 사도들이나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들은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했기에 초대 교회의 역사는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메시지가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은 마리아가 전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16:10-11).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자,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으나 그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도마도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에도 미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과 완악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16: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지 않는 것을 마음이 완악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는 것은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실망이 찾아오거나 주님보다 더 나은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기에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났을 때 찾아오는 것은 절망과 실패와 좌절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을 떠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가야 합니다. 그 비결은 교회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가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망을 이기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은 완성되었음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고, 무덤에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