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를 이해하라

비전의 사람 2021. 12. 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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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를 이해하라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의 겐그리아에서 A.D. 55년에서 58년 사이에 기록했습니다. 이 서신은 사도 바울의 3차 선교 여행을 마치면서 고린도에서 삼 개월을 체류하며 기록했습니다.

 

1. 로마서의 배경

 

로마에는 약 4-5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 자체가 각종 민족들이 모인 도시이기도 했지만, 폼페이우스가 주전 63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수 천명의 유대인들을 노예로 끌고 왔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후에 자유를 얻고 풀려났는데, 이는 로마에 있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노예 아니면 자유인의 신분을 갖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로마 기독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독교로 회심한 유대인들이 로마에 복음을 들고와서 유대인과 이방인 개종자 가운데서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다가 복음을 듣고 돌아 온 유대인일 수도 있고, 본도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처럼 장사할 기회를 얻기 위해 다른 도시를 다니다 구원받은 유대인일 수도 있습니다.

 

주후 49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를 로마로부터 추방하였습니다. 이는 유대 공동체에서 크레스투스라는 사람으로 인하여 유대 공동체에서 일어났던 소요 때문이었습니다. 클라우디스의 죽음 이후에 추방령은 철회되었고 추방당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주류가 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귀환한 유대인들과 남겨져 있던 이방인들 사이에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 그리스도인과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음식법과 절기에 관한 시각이 현저하게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 풀어야 할 문제가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후 55년과 58년 사이에 고린도나 그 인접한 항구 도시 겐그레아에서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선교 사역이 분기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일뤼곤(마게도냐와 그리스의 북부 지역)까지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한 후에, 이제는 새로운 땅인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스페인까지 이루는 지역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북아프리카, 이집트 지역에도 계속 복음을 전하면서 문명화된 세계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선교 사역을 마무리 지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을 계획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2. 로마서의 메시지

 

1. 서신의 서론(1:1-17).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사도 바울은 서신의 서론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정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로서 자신의 권위를 밝힘으로 로마 교회가 자신의 서신을 인정하게 하는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복음은 성경에 미리 예언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되셨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고 그들에게 나아가 영적인 은혜를 나눔으로 교회를 견고케 하고 자신은 그들의 후원으로 위로를 받고자 했습니다.

 

로마서 116-17절은 로마서의 핵심 구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이 구절은 복음에 대한 위대한 선언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1:18-3:20).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진노를 하늘로부터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심판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머리에 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죄는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피조물 속에 보여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숭배함으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동성애와 같은 성적인 죄로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실한 마음으로 인하여 불의와 탐욕, 악의와 살인, 분쟁, 비방과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로마서에서 지적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범하는 죄의 모습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1:29-31).

 

이러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이방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지만, 유대인들은 숨어서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회개케 하기 위하여 용납하심을 거역하며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할례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함으로 정죄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서 한 사람도 의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은 사람의 어떠한 선행이나 종교적인 활동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죄 아래서 살아가는 인간의 절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3:21-5: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3:24).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에게 어떠한 소망이 있을 수 있나요?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21절에는 율법 외에 다른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1-22).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의 의에 의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이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자신의 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3:24-25).

 

구속이란 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서 우리를 사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화목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가장 존중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을 예로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4:3).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과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자 하나님이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이와같이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믿음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통하여 구원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거부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6-8). 사도 바울은 다윗도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복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의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가 죄인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으로 인하여 죄를 범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과 같은 혈통으로 의인과 죄인으로 구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선민 의식이 있어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으로서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모두가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분을 믿는 자들은 생명과 의를 얻습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의롭게 된 자는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6-8).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의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칭의라고 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자들이 의롭게 되었기에 죄를 범할 자유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1-2). 구원받은 자가 더 이상 죄에 대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 성화를 이루어가는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영적으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침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됨으로 옛 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사도 바울은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기에,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서 사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피조물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죄가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함으로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의로운 자는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사용하는 것이 성화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롭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찾아오는 죄의 유혹으로 인하여 큰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4)라고 한탄했습니다. 그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지체 속에 있는 죄가 자신을 유혹하여 죄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육신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에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5-16).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선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무도 대적할 수 없고, 송사할 수 없으며 관계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며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릿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8:38-3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9-11).

 

“ ...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5-26).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지옥에 가더라도 형제들인 유대인의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9:3). 사도 바울은 모세와 같이 자신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꾸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과 조상들, 그리고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난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육신으로 난 이스마엘이나 에서는 아브라함의 혈통에 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속의 자녀인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받았고, 더 나아가 야곱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하나는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귀한 그릇은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난 의를 가진 자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행위에 의지하는 것은 부딪힐 돌에 부딪혀 넘어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을 좇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3-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즉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을 그 효력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8-9).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 의식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화과 나무의 뿌리이기에 이방인들은 돌감람 나무로서 접붙임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참감람 나무의 뿌리인 유대인들에게 교만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감람 나무인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않자 그 가지를 꺾으셨듯이,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들도 불순종하면 꺾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겸손히 행하며 유대인들을 향해서도 겸손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지금도 유대인 가운데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6. 의롭게 된 자는 변화된 삶으로 주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12-15:1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의롭게 된 자는 하나님 앞에 영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첫 단추는 바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우리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은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성물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첫째, 교회에서 지체 의식을 가지고 영적인 은사로 섬깁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5).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입니다. 지체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섬기며, 지체들을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둘째,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13:1). 하나님은 권위를 세우셔서 세상의 질서를 세우십니다. 우리는 가정과 교회, 국가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셋째, 교회에서 서로 받음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연약함을 보고 업신여기는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비판하는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는 서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를 위하여 살아가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주께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심판받을 날이 있기에 그 판단은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교회가 더욱 하나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4:19). 우리는 화평과 덕을 세움으로 사랑의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7. 사도 바울은 로마를 방문할 계획을 말하며 동역자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15:14-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복음의 제사장 직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했고, 이제는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로마를 거쳐 서바나인 스페인으로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사랑을 받아 스페인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자신과 함께 사역했던 일군들과 자신이 알고 있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문안했습니다. 먼저 겐그리아 교회의 일군인 뵈뵈를 천거하며 그녀는 자신의 보호자라고 해씁니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자신의 목이라도 내어주기까지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동역자임을 알리며 문안했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동역자로서 함께 했기에 그들에게 안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인하여 교회가 든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됨을 선언하며 로마서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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