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강해

요한일서강해(2)- 빛 가운데 거하는 삶(요일 1:5-10).

비전의 사람 2022. 3. 26. 20:25

요한일서강해(2)- 빛 가운데 거하는 삶(요일 1:5-10).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한 후에는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우리는 자신의 죄를 쉽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두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숨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숨기고 부인하며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려고 합니다. 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깨트리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더라도,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리거나 하나님의 자녀됨에서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 때문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기에,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이 생겨 더 이상 교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서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사도 요한은 그의 메시지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다시 사람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으시고 완전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순결하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 분에게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빛은 거룩을 나타내지만, 어두움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신 것에 대하여 주님도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을 밝히시는 빛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빛을 얻어 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그분과 교제하는 우리도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의 교제에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죄악된 행동을 한다면, 그는 진리를 행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두운 가운데서 죄를 범하는 것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거짓 교사들이 삶으로는 죄를 행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금욕주의로서 자신의 몸이 죄악되기 때문에 결혼을 금하거나 음식을 금함으로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도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을 지적하면서 몸을 괴롭게 한다고 했습니다(2:23). 영지주의의 다른 모습은 방탕주의였습니다. 그들은 영은 거룩하지만 몸은 악하다고 주장하며, 악한 몸이 죄를 범하는 것이 영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를 범하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3:5-6)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지주의자들이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범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치자,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음란과 부정과 악한 정욕이나 탐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어두움에 행한다는 것은 죄악 가운데 행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행한다는 것은 습관적인 삶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행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설명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듯이, 구원받은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행하며 동시에 진리를 행할 수가 없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진리를 믿고 행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믿는 자를 위하여 기록했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어둠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영적인 성장이 없으면 육신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6장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삶이 아직 죄의 어두움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행하는 것은 죄악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하는 죄는 골로새서에서 경고한 것과 같이 음란을 행하거나 악한 정욕을 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탐심을 품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불의한 이익을 얻는 일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악의를 품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중상모략하거나 비방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함부로 대하며 욕설을 하는 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잘 사용하지 못하여 영적 생활을 게을리하며 예배를 소홀히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빛이시기에,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거룩함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참된 교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빛 가운데 서로 교제하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요한일서 17절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사귐이 있고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인답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지체간의 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거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빛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거하시는 것은 완전한 순결과 거룩함에 거하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우리가 그 분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의 속성은 죄에 오염되지 않은 온전한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완전히 빛 가운데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죄의 유혹일 이기게 하는 길을 날마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면서, 우리의 삶에서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조정하고 변화시키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두 가지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는 서로 교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결하게 살아가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고 하지 않고 서로 교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고 서로 교제하는 삶은 이미 하나님과 교제가 있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교제는 단지 우정이나 연합이 아닙니다. 교제는 커피나 식사 하는 모임이상입니다. 교제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인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영적인 친밀함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향한 친밀함을 나누며 관계를 맺어 갑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일어나는 두 번째 결과는 우리의 죄가 씻어지게 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사도 요한은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를 씻음 받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죄를 범하는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 교제를 통하여 우리가 예수의 피로 모든 죄가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매일의 삶에서 믿는 자가 죄에서 씻음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체들과 교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가 씻음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단지 우리의 구원에서의 죄를 씻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죄를 씻어주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날마다 씻어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범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십니다. 이는 우리의 성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칭의는 단번에 일어나지만, 성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일하시면 십자가의 은혜로 날마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씻는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죄는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더럽게 하지만, 죄에서 씻김으로 죄의 결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해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사도 요한은 죄는 몸을 영적으로 더럽게 하기에 그리스도이 피로 씻어져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 것은 의식이나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이 씻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10:4)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를 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죄나, 말과 행동으로 하는 모든 죄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15-7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초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자신의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사도 요한은 8-10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8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한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없다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자신이 죄없다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바다에서 물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고 하는 자보다 덜 어리석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범한 죄에 대하여는 변명을 하거나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쉽게 정죄하면서도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변명하며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는 영혼의 질병입니다. 죄는 영원한 멸망의 도구이며, 사람의 본성을 무너트리는 악입니다. 죄는 영혼을 노예로 삼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죄는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세상은 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들이 밤에 다니기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죄가 이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이유는 죄가 누군가의 돈을 훔쳐가기 때문입니다. 지역마다 법원이 있고 유치장이나 교도소가 있는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잠금 장치를 하고, 거리마다 cctv 를 설치하는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폭탄이나 총에 죽어가고, 어린 아이들이 고아가 되거나 러시아로 끌려가고, 수많은 난민들이 집을 떠나 다른 나라로 피신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 죄가 관영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죄를 범하는가요? 그 죄를 범하는 자는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출생 때부터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사람은 죄를 범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그 뿌리를 찾아가면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예쁘게 자라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형제까지 또는 자매끼리 다투거나 싸우기도 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기도 하며, 친구들까지 싸우면서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죄의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본성에서 우리는 이기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 없다 하는 것은 두 가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죄 없다 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자신의 삶에서 죄의 증거를 부인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의사가 어떤 사람의 몸을 진단한 후에 말기암이라고 하면서 몇 주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사실을 믿기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은 몸에 아무런 질병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는 무척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와같이 자신의 영혼의 질병인 죄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인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책임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죄가 없다하는 자가 얻는 두 번째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구원받은 자들을 위하여 기록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이와같이 요한일서 18절도 믿는 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라도 죄를 범한다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믿는 자는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됩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4-15)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행하던 죄를 따르지 말고 우리를 부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믿는 자라도 죄 없다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이나 말, 그리고 행실에서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자라도 죄를 범하는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죄를 숨길 수도 있고 자백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자백이란 자신이 범한 잘못된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9절에서 죄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를 사용했습니다. 즉 우리의 구체적인 죄들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추상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신의 죄를 인식하면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들을 고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미쁘시다는 것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신다는 그 분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31:3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에 신실하셔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의로우시다는 것은 죄를 자백하는 자를 용서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형벌을 예수님에게 내리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의로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에 대하여 값을 지불하셨기에 용서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그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의로우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능력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죄를 범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허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죄는 지체들과의 교제도 끊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와 자백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교제를 회복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다면, 우리는 다른 지체들과의 교제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죄는 죄책감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는데,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성령이 주시는 양심이 우리를 일깨우고 죄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의 양심 속에서 죄책감을 갖게 합니다. 이때 우리가 그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깨끗하게 씻겨 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라지게 하면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양심과 인격을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리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죄를 자백하는 것이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의 공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십니다. 죄의 형벌은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 후에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죄는 우리의 삶을 영적으로 더럽게 합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삶에서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면 마치 샤워하면 몸이 새롭게 되듯이,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다시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10). 죄는 무엇인가요? 죄의 의미는 표적을 빗나가다 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죄는 선을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죄를 범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사실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믿음과 행동 속에 조금도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일서 15절에서 10절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조금도 죄가 없으시고 완전히 거룩하십니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고 하면서, 아직 어두운 죄악 가운데 살아간다면, 우리의 말은 거짓입니다. 우리의 죄악된 행실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진리를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바르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가 있고 다른 지체들과도 교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우리에게서 모든 죄를 씻어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이 보여주신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이 범한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잘못된 행실을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결고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조금도 적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지체들과의 교제를 위해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면서 지체들과의 교제가 회복되어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