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강해

요한일서 강해(3)- 우리의 대언자(요일 2:1-2).

비전의 사람 2022. 4. 2. 16:18

요한일서 강해(3)- 우리의 대언자(요일 2:1-2).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요한 1서는 빛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행하지 않고 다른 지체들과 사귀는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귀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빛 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씻음받는 비결은 우리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죄가 없다하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아 씻음 받을 수 있는 영적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사도 요한은 구원받은 믿음의 자녀들에게 요한일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나의 자녀들아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믿음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영적인 가족으로 표현하며 자녀들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 서신을 쓴 것은 그들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표적을 빛나가다(miss the mark)’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로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기준에 벗어나는 생각이나 행동입니다. 요한1517절은 모든 불의가 죄로되 ...”라고 했습니다. 죄는 아담에서 시작되어 온 인류에게 전염병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범하게 되었고,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기에 사람들이 범하는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의 죄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죄에 대한 심판으로 영원한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가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한 구원이기에 죄를 범해도 괜찮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죄가 많은 곳에는 은혜도 넘치는 것이다 라고 햇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죄를 범할 수록 은혜가 넘치니까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1-2)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살아가는 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기에 죄를 범하게 하는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어두움 가운데 행함으로 인하여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풍성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영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함으로 교제의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행하면 기도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59:2).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의 교제에 금이 가게 되고, 그 죄가 씻음 받기 까지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깨끗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강팎하게 하면 징계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버리게 하십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하나님은 고집을 부리며 회개치 아니하는 자에게 의로우신 판단으로 심판날에 진노를 쏟아 부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종말의 날에 백보좌 심판으로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12:6).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기를 원하시기에,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는 아비와 같이 영적인 자녀를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징계를 통하여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12:11).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행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빛되신 하나님과 같이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숙고하면서 불의가 나타나는 것을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고범죄를 짓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가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9:12-14). 자신의 허물을 깨닫는 것이 정결한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고범죄, 즉 하나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행하는 범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도록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언자이십니다(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고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새 생명으로 거듭났지만 아직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7:19)라는 말씀과 같이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했습니다. “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대언자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돕기 위해서 곁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다른 단어는 성령의 다른 이름인 보혜사 라는 단어에 사용했습니다. 보혜사는 우리 곁에서 돕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영적 생활을 도우시며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기도를 도우십니다(8:26).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 기도를 도우실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하여도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같이 우리를 위한 대언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변호하시는 대언자이십니다. 대언자는 다른 사람을 변호하기 위하여 간구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8:3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면 용서 받을 수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셔서 죄가 없으십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를 범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대신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대언자가 중요한가요?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범하기 때문에, 새롭게 범하는 죄에 대하여도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대언자가 계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대언자는 법률적인 용어입니다. 재판을 받는 법정에는 판결하는 판사와 죄를 고소하는 검사, 그리고 기소당한 피고인과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어떤 혐의가 드러난 것에 대하여 검사는 판사에게 피고가 범한 죄와 그 죄에 따른 형벌을 판결하기를 요청합니다. 의로운 재판장은 그 혐의에 따라 판결해야 하지만, 피고를 위한 변호인의 변호를 듣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것에 대하여 사탄은 우리가 범한 죄와 그 형벌을 판결하기를 요청합니다. 사탄은 항상 고소하는 자입니다. 이때 우리를 위한 대언자,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변호합니다. 우리가 범한 죄를 인정하지만,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죄가 씻어졌음을 호소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그 죄가 모두 용서 되고 씻어진 것입니다. 이때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에 대하여 무죄로 판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단번에 용서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대언자가 되셔서 우리의 죄가 씻음받도록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언자가 되셔서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에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중보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의로우신 분이식에 자신의 의로움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기를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하면 그 죄에 대하여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여 용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용서하시지만, 우리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와의 교제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날마다 용서하시는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2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화목제물이란 헬라어로 힐라스모스 로서 속죄를 위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제물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언자가 되시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의에 대하여 하늘에서 진노를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집을 부리고 회개치 아니한 자들을 향하여 진노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내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기에 그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셔서 대가를 지불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대신하여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 일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하시는 재판관이십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리시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우리의 죄의 형벌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죄에 대하여 두 번 형벌을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아들에게 내리셨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진노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위한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은 누구든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자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예수님은 예정된 사람만을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보내셨기에 우리에게도 복음의 메시지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것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의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 어두움을 떠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을 화목 제물로 드려서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 주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되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죄를 씻어주셔서 의롭게 하셨을 뿐 아니라, 구원받은 후의 죄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씻어주시고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 세상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선포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온 세상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