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연구

여호수아 강해설교(10) - 방심하지 말라

비전의 사람 2022. 5. 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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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강해설교(10) - 방심하지 말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9:8).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에 찾아옵니다. 우리의 사역에서도 가장 성공적일 때에 가장 큰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긴장을 풀고 있을 때에, 사탄은 우리의 틈을 발견하고 찾아와 유혹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일을 하는 일에 실패하게 되면, 그 다음은 광명의 천사로서 나타나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는 일을 하는 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같은 일을 사탄이 여호수아에게 한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여호수아는 결코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함으로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에서의 패배를 용기를 가지고 대처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간의 죄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여호수아는 830-35절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드렸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였고 그 분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돌에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8:32).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율법을 읽었습니다. 모든 것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교훈을 배운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그들은 아이성의 패배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에, 가나안의 왕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성에서의 이스라엘의 패배를 의식하며 저들에게도 전쟁의 승리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패배와 그 후의 승리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여러 나라가 동맹을 맺어 더 많은 군사와 창과 검이 있다면 이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그들의 생각은 납득할 만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성이 적은 수로 공격했던 이스라엘을 패배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것은 결코 용납되는 일이 나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영적인 무지함으로 인하여, 여리고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가나안 까지 이스라에 백성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 중에 기브온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브온은 가나안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비록 기브온 사람들은 왕이 없었지만, 그들의 도시는 가나안의 어느 도시에 견줄만큼 인정받는 도시였습니다. 여호수아 102절은 기브온 도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10:2). 기브온 거민들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 중에서 히위 족속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기브온은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여아림을 지칭하는 연합된 성읍이었습니다. 기브온은 왕은 없었으며 장로들이나 평의원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비록 군사 동맹을 맺으러 왔던 모든 왕들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싸우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9:2), 기브온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왕들이 여리고와 아이성에서 일어난 전투와 이스라엘의 승리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을 듣자, 그들은 다른 결론을 얻게 됩니다.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9:3). 그들은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군사동맹에 연합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꾀를 내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으로 이스라엘을 이길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음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성의 전투에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전투하는 하나님의 군대였던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의 군사동맹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적인 능력에 관하여 다른 결론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 그들의 군사력은 이스라엘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정확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의 전력은 기만적(deceptive)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우상을 버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을 것입니다. 라합과 그녀의 가족은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이스라엘에게 접근했던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이 먼 나라에서 온 인상을 심으며 이스라엘을 속였습니다. 그들은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9: 4-5). 그들이 이스라엘의 진에 도착한 후에 여호수아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9:6).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이러한 것은 탁월한 전략이었습니다. 기브온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지식으로 이스라엘을 속이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 지식은 어떠한 지식일까요? 모든 가나안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가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찌라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23:31-33).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을 알았습니다. , 가나안의 밖에 있는 도시는 보전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가나안 안에 있는 도시는 파괴되어야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의 40년간을 마무리하면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치면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거든 너는 그 성읍을 애워쌀 것이며...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찌니.” (20:10-12, 15-16).

 

그러므로 기브온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자신들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먼저 행동을 보여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평화를 선언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나안인이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해결책은 그들은 가나안땅으로부터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접근할 때에 여리고와 아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9:9-10).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율법에 관하여 철저한 조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여호수아가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율법을 가르칠 때에 정탐꾼으로 와서 그 율법을 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인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이 되기를 자원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도시에 대한 언급을 피함으로써 자신들은 가나안 땅에 대하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들의 옷과 장비들은 낡았고 먼 여행으로부터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며 기만적인 것은, 그들이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기브온 거민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긴장을 풀고 순간 방심했습니다. 그는 그들과 언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9:15). 불행하게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9:14).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우를 예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자원을 주셨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에게 찾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27:18-21). 그러나,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는 기브온 사람과의 처음 만남에서 그들에 대하여 회의적이었으나 (9:7), 그는 너무 빨리 반응하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들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속임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여호수아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이러한 일은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에게는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위대한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위대한 강점이 큰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쉽게 사람을 믿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순결한 동기를 가진 정직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눈을 통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쉽게 속을 수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정직하고 선한 동기로 접근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속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상황이 결코 여호수아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성경을 잘못 적용했으며, 모든 사실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여호수아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이도록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항상 표면적인 상황과 내면이 다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방어하거나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정직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삼일 만에 자신의 실수를 발견합니다.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 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9:16). 여호수아는 이 사람들이 가나안에 살고 있는 이웃 민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에 얼마나 놀랬을까요? 그들이 사는 곳은 기브온과 그비라,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었습니다. (9:17).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결정은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여호수아의 실수는 잘못된 정보에 기초했지만, 그들의 언약에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로서 서로간에 약속으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기브온과의 맹세를 깨트린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 가나안 족속 중에서 수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비록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임을 당함으로 죄를 범했지만, 언약을 깨트리는 것은 죄를 더하는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그는 순식간에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실수를 발견했을 때에, 그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9:22). 여호수아는 비록 자신들이 속아서 언약을 맺었지만, 그는 그 결정을 번복할 수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브온 사람들에게 종이 되는 저주를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 (9:23).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결정에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느니, 차라리 이스라엘을 섬기며 사는 것이 오히려 좋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9:25). 하나님께서는 원래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거나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기를 원하셨지만, 그분은 여호수아가 그들을 살려두기로 한 결정을 존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을 맺었기에, 그 언약을 깨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과 언약을 맺은 후에 기브온과의 언약을 위하여 부름을 받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기브온과의 언약을 들은 후에 화가나 기브온 도시들을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0:3-4). “...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10:4).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기브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인고로 즉각 반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을 위하여 나아갈 때에 그는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10:8).

 

여호수아는 기브온과의 언약의 아픔을 통하여 무척이나 가치있는 교훈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 뜻을 구한 후에,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지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 9장에서의 기브온과의 언약을 통하여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사탄이 성경을 이용하여 우리를 속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신중히 검토했습니다. 그는 몇 일을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지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생각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밖에 있는 백성들과는 언약을 맺을 수 있지만, 가나안 안에 있는 백성들과는 언약을 맺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속이게 함으로서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사탄은 간사한 적으로서, 거짓은 그가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고 불렀습니다. 더구나, 그가 사용하는 가장 간사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교활한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계교를 알아서 사탄에게 속아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그 분을 유혹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 올려놓고서는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곳에서 뛰어내리라.” 그러고,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너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4:6).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수아가 속은 것처럼 속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 분은 사탄의 계교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4:7).

 

오늘 우리도 사탄의 이러한 간사한 유혹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거나 해석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단들로부터 성경을 배우면서 미혹되어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멸망의 길이 되기에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함으로 인하여 사탄에 속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술은 마셔도 되지만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언에 기록된 술을 보지도 말라는 말씀에는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잘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성경을 주관적으로 사용하면 속을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하여 무척이나 피상적이며 신비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예로서, 그들은 종종 성경을 펴서 첫 구절이 눈에 들어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특정한 결정을 내리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무척이나 위험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록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함으로 인하여 잘못된 길로 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성경을 열고 자신의 눈을 한 구절에 고정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구절은 가롯 유다가 목매어 주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 구절에 놀라서 다시 성경을 폈습니다. 이번에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서 이렇게 하라.” 그는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좋은 방법이 아니구나. 우리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우리는 성경을 본문의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문법적인 상황을 이해하면서 그 본문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 타임지에 나온 기사 내용입니다. 미국의 큰 이슈가 낙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반대하지만 그 낙태를 하는 의사나 병원에 대하여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무척이나 극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낙태를 하는 의사를 총으로 저격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주장한 것은 살인한 자는 죽임을 당할지니라.’ 라는 구절이었습니다. , 그는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처형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한국인의 눈에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중의 하나가 교회가 정치적인 성향을 띠면서 영적인 이슈보다도 정치적인 이슈에 개입되면서 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때가 되면 교회가 선거에 동원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들이 구약의 하나님의 통치와 신약의 교회 시대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통치하셨기에, 그 나라는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통하여 영적인 영향력을 세상에 끼쳐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결코 세상적인 방법이나 물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3. 우리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속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기 위하여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두 번째와 같은 실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는 잘못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미리 정한 뜻이나 믿음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성경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에 얼마든지 쓰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신학의 잘못된 가르침을 낳고, 더 나아가 이단들이 나타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며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향하신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구절의 단어들, 구문, 문장들이 문맥에서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이 씌여진 원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셋째, 성경이 본문에서 문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사용되어진 의미를 알고 접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적인 접근보다 비유적인 접근법으로 더욱 해석하려고 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종종 비유법적인 언어로 성경을 기록하였지만, 이러한 방법은 사실적인 글을 해석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온갖 종류의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환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환경을 측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환경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경이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환경들은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과의 만남과 같이, 속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모든 것들이 좋아 보입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그 상황들의 내면은 표면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사건들을 해석하는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탄은 우리의 이러한 연함을 이용해서 공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과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 더욱 기도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기만과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과거의 실수에 매이지 말고 항상 주님만을 바라보며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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