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강해

요한일서 강해설교(15) -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요일 4:7-11).

비전의 사람 2022. 7. 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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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설교(15) -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요일 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요한일서에서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감동을 주는 말씀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요한일서 47절의 한 말씀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네 개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 7절에서 11절 까지 모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총 13개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고, 부모에게는 자녀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형제에게는 형제 자매의 사랑이 필요하고, 교회에서는 지체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의 사랑이 필요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간의 상호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픈 자에게는 사랑의 터치가 힐링하는 힘을 주고, 낙심한 자에게는 사랑의 말 한마디가 다시 일어나게 하는 용기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함께 주님을 예배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믿음과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을 통하여 발견하는 3가지의 진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4:7-8).

 

사도 요한은 우리를 향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은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사도 요한이 그가 인도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서로를 향하여 바라볼 때에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다른 아이를 바라볼 때 하고는 다릅니다.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랑의 시선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며 본능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되 말로만 하지 않고 희생과 헌신으로 다가갑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 지체를 바라볼 때에 원망이나 반감이 아니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향하여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랑의 근원은 이 세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빛이 태양으로부터 비추듯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 자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 없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아들을 보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은 이유는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기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산속 깊은 근원에서 물이 흘러가 개울을 만들고 강을 만들어 바다로 흘러가듯이, 하나님으로부터 흐르는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새로운 본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이듯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흐르는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요한일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고,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의 DNA 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일정부분 부모로부터 유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하나님의 성품과 DNA 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자녀들은 하나님이 소유하신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났기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을 아는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참된 변화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랑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할 수 있는 용량이 생겼습니다. 비록 우리는 종종 이기적이거나 육신적으로 행동하려는 유혹을 받지만, 우리는 구원받기 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8절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빛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할 때에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 자체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창조를 통해서 나타났고, 우리의 구원을 통해서 보이셨으며 지금도 우리를 공급하시는 은혜 속에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독생자를 통하여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는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그 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 뿐인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잘못하면 잘못한 사람이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우리가 교회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뜨거운 국물을 다른 사람의 양복에 튀게 하면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으로 잘못을 구하고 사과를 합니다. 그리하여 상한 감정을 사과로 풀어 줌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만일 양복이 국물로 크게 상했다면 세탁소에 맡겨서 옷을 세탁하도록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미리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여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먼저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른 선지자나 천사를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유일한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심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의 열매를 통하여 은혜를 얻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독생자는 헬라어로 모노게네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두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모노는 하나라는 게네스는 유전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즉 독생자는 같은 하나뿐인 혈통이라는 뜻입니다. 즉 독생자는 다른 피조물과 공유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성을 공유한 유일한 분인 것입니다. 독생자는 오직 한 분이신데, 그 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질을 공유하시는 하나뿐인 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같은 성품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지만,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본성과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독생자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공유하신 하나뿐인 아들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하나뿐인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아들보다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우리가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였지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생명으로 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1절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아들을 화목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화목제는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드려진 희생 제물을 의미합니다. 즉 희생 제물을 드림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않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희생 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려 속죄했고 제물은 불로 태웠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번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염소의 피로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죄소에 뿌려 속죄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거룩하십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범하는 죄에 대하여 불같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공의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시기에 사람이 죄에 대한 형벌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의 삯으로 뜨거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아무런 조건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시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셔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서 우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당하시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사망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화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아들을 속죄의 희생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셔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화목제물이란 하나님이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보여주신 사랑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형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하곤 했습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는 도덕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교회에서의 의무는 우리가 마땅히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계명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죽음을 당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죄인들 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할 뿐 아니라 세상의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구별된 자가 되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의 영혼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끼리만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벗하고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2). 예수님은 의인을 위해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회개시키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죄인이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세상의 영혼들을 사랑하여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하는 사역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삶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책임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삶은 진리를 사랑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하여 요한복음 316절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는 이유를 극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로 인하여 미워하는 일을 버리고 사랑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에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교만에 빠져 있었고, 자기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시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서 변화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씨앗이 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되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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