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강해

요한이서 강해: 진리와 사랑 안에 행하라(요한2서: 1-13)

비전의 사람 2022. 8. 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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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서 강해: 진리와 사랑 안에 행하라(요한2: 1-13)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 4).

 

사도 요한 시대에 거짓 교사들은 교회에 침투하여 거짓된 교리들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단호하게 책망하며 우리도 동일하게 이단들에게 대처하라고 가르칩니다.

 

1. 인사 (Greeting, 1-3).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요이: 1).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장로는 헬라어로 프레스부테로스로서 연장자 또는 교회를 치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은 목사라는 칭호에 대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로서 감독, 그리고 목양하는 역할로 목사, 그리고 교회의 연장자라는 의미로 장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목사의 다양한 역할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 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자들을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벧전 5:1).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한 것은 교회의 목사에게 순종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이서를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언급한 부녀와 그의 자녀는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을 참으로 사랑하며 자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가 사랑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요이: 2)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며 영원히 함께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는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가르침이나 이단 사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거짓에 속지 아니하고 미혹되지 아니합니다.

 

사도 요한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이: 3)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긍휼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죄로 인하여 진노의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형벌을 피하게 하십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의 선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것이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주시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씀과 복음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고, 사랑은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하시는 배경이 됩니다. 사도 요한은 참된 믿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나오는 사랑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서로 사랑하라 (love one another, 4-6).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 4).

 

사도 요한은 인사를 하고 진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행하며, 진리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믿음의 성도들이 진리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 4). 그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순종 보다 더 높은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항상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요이: 5). 사도 요한은 사랑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복음이 시작된 이후부터 가졌던 계명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명령은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과 행동은 항상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왜 믿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바르게 행하는 삶의 기초가 됩니다. 에베소서 41절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4: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심 대로 바르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믿음은 삶에서 의로운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빌립보서 127절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다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1:27)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품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삶의 핵심은 의로운 삶에 있는 것입니다.

 

3. 거짓 교사를 경계하라 (7-11)

 

사도 요한은 7절에서 주제를 거짓 교사와 교리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2:7). 거짓 교사들과 거짓 교리들을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거짓 교사들을 미혹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미혹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신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나와서 그들의 거짓 교리들을 가르쳤습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여행하는 교사들이나 선교사들을 집으로 영접하여 섬기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교사나 교사가 이단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집으로 영접하고 환대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 말아야 할까요?

 

사도 요한은 두 번째 서신은 초대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방문하고 싶었으나 그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서신으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2:12). 우리는 이단 사상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과 교리들에 대하여 항상 경계해야 하며, 그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거짓 교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성육신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올 수 없다고 가르침으로 성육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자에게 침례 받을 때에 영으로 임했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영이 떠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이단 사상이며 적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 숭배를 받으며 온 세상을 통치할 마지막 독재자입니다. 그러한 적그리스도와 같은 영을 가진 거짓 선지자들이 초대 교회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인본주의적인 철학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경을 부인하는 일을 합니다.

 

요한 28절은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2:8)고 했습니다. ‘너희는 너희를 삼가라는 말은 자신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속이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너희를 삼가라는 말은 계속해서 경계하여 자신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안주하는 것은 우리에게 거짓된 안정감을 주어 우리가 미혹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지킬 때에 우리가 일한 것에 대한 상급을 잃지 않고 천국에서 온전한 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혹되어 믿음에서 떠나게 되면 우리가 수고한 상급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온전한 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9절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가지 못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2: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기에 구원받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지내쳐라는 의미는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 거짓 교리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언급한 거짓 교사들은 자신을 탁월한 사상가로 간주하곤 했습니다. 또는 그들은 진보주의적인 사고로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변화시킨다고 미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를 뛰어 넘는 급진적인 사고는 비진리로 변질되는 것이고 결국 복음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들은 한번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했기에, 성경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결합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세상의 철학과 혼합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당시의 진보적인 사고는 모든 사람은 결국 구원받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특별한 계시를 깨달아야 구원받는 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으로 거짓 교리에 속한 것입니다.

 

요한 210-11절은 거짓 교사들이 우리를 미혹하려고 할 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2:10-11). 첫째, 우리는 그들을 집으로 영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 이단들을 집에 들이고 인사하는 것은 그들의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짓 교리들을 가지고 와서 가르치는 자들을 집에 들이지 말거나 인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나쁜 영향력에 미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집에 거짓 교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찾아오는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자들이 찾아오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4. 문안 인사 (12-13).

 

사도 요한은 요한 2서를 통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고, 거짓 교리들을 경계하고 거짓 교사들을 거절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진리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며 진리를 사랑하고 지켜가야 합니다. 사랑은 진리에 순종하는 자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 보다는 그들을 대면하여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2:12). 사도 요한이 그들을 대면하여 말하려 했던 이유는 글보다는 대면함으로 오해를 줄일 수 있고, 서로 만남에서 찾아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사도 요한은 진리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들과 개인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요한에게서 교제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종이와 먹보다는 만나서 교제하며 기쁨을 누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자신이 카톡이나 전화 보다는 만나서 교제함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카톡이나 메시지 보다는 전화가 좋고, 전화 보다는 만나서 대화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차나 식사 하면서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를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2: 13)라고 했습니다. 자매의 자녀는 교회의 회중을 일컫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거나 영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거짓 교사들과 교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의 가르침을 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을 가르치는 사탄의 역사에 참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우선 순위는 진리와 사랑이어야 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2:3). 우리에게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으며 진리와 사랑이 가득합니다. 진리와 사랑은 교리를 세워가는 기둥이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듯이, 우리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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