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거룩한 교회를 세워라(7) -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가 되라

비전의 사람 2022. 11.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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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교회를 세워라(7) -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빛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둘째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없다면 이 세상의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식물은 태양이 비추는 빛을 이용하여 광합성을 일으켜 식물이 생존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빛을 사용하여 산소를 만들어내고 탄수화물과 같은 영양분을 만들어 내어 생존합니다. 식물이 없다면 동물들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육식도 하지만 초식을 함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즉 동물이나 사람들은 식물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빛은 생명을 주는 요소입니다.

 

성경은 빛과 어두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과 어두움이 있고, 동시에 영적인 빛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움 보다는 빛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분에서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3:19-20).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빛되신 예수님을 미워하며 자신들의 행위가 드러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두움 가운데 무엇을 더 사랑하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빛이라면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빛 가운데 거하여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회가 더욱 세상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빛의 근원이십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9).

 

성소에는 세 가지의 기구가 있었습니다. 성소는 거룩한 곳이었기에 제사장만이 들어가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진설병 상과 분향단, 그리고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이 세가지는 성소의 기구로서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가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의 기구에서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의 사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설병 상을 통하여 배우는 말씀 사역과 분향단에서 가르치는 기도 사역, 그리고 등잔대를 통하여 배우는 전도 및 선교를 통하여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등잔대의 역할은 어두운 성소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성소는 세마포 휘장과 염소털 가죽, 그리고 양 가죽과 수달의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실내는 어두웠습니다. 그러므로 등잔대에서 비추는 등불은 성소를 밝게 하여 제사장들이 섬길 수 있게 했습니다.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25:31, 37).

 

등잔대는 정금으로 만들어야 했고 정금 한 달란트를 쳐서 한 덩이로 연결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등잔대의 등잔은 양쪽으로 세 개씩 만들어 총 일곱 개를 만들어 감람유를 부어 등불을 켰습니다. 등잔대의 등잔은 살구꽃 모양의 잔과 꽃받침과 꽃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등잔대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소에 등잔대를 두셔서 등불을 켜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등잔대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생명과 빛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빛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첫째 날에 창조하신 것이 바로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1:3-4).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은 태양이나 달과 별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태양과 달은 넷째 날에 창조하셨고, 빛은 첫째 날에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후에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에 각종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과실을 만드셨습니다. 특히 에덴 동산에는 생명을 주는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등잔대의 모습은 생명 나무와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등잔대는 밑받침과 줄기, 그리고 꽃 모양의 잔과 꽃받침과 꽃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등잔대는 하나님 존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는 “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에 그분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분의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빛되심과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심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27:1). 우리의 하나님은 빛이시며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기에 빛되신 하나님을 통하여 참된 구원에 이르며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편 기자와 같이 생명과 빛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9).

 

우리는 생명이 하나님께로 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즉 우리는 어머니 뱃속의 태아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기에, 낙태하는 것은 한 생명을 죽이는 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나요? 우리의 존재는 단지 생물학적인 부모님의 결혼에 의해서 태어난 이상으로 하나님이 나라는 존재를 지으셨고 이 땅에 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43: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빛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이 되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1:4-5).

 

성막의 등잔대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과 빛의 근원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참된 생명과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우리 가운데 성막을 세우셨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 이 세상에 오신 주님안에는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빛이 되셔서 참된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신 참빛이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9). 예수님은 어두운 이 세상에 영적인 빛을 비추시는 참빛이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9:2). 죄의 어두움에 살아가던 흑암의 백성과 소망없이 살아가던 어두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 땅의 백성들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았던 빛은 그들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방의 빛이 되어 구원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49:6).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의 빛으로 보내셔서 온 세상에 구원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9:5)라고 하셨습니다.

 

참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오는 자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된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이시며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요일 1:2).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 5:20).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는 그 분이 이 세상의 참된 빛과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참빛과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아직 어두운 가운데 거하며 사망의 권세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자연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영적인 생명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살아가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참된 생명인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그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생명을 얻으면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빛이시기에 우리는 그 분의 빛 가운데 거하며, 그 분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생명의 빛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생명을 주는 빛이 비추어 우리의 영적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서 빛 가운데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와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어두운데서 살아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에 있는 금촛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즉 금촛대가 상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는 결코 어두움이나 사망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빛 아래서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3.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5:14).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빛이 되셔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두웠던 마음에 생명의 빛이 비추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비추어야 할 빛입니다.

 

빌립보서는 우리의 부르심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shine as lights in the world)”(2:15). 우리는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빛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추는 빛은 우리의 자랑이나 권세가 아닙니다. 세상에 비추는 우리의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입니다. 즉 복음을 통하여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비추어야 할 빛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시며, 우리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2:5). 우리는 허물로 죽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으로 그 분과 함께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며, 이러한 삶은 세상에서 선한 행실과 복음을 전하는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게 합니다. 세상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새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생은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주님의 빛을 비출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행함으로 예수님의 빛을 비출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에서 불평과 원망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때에 주님의 빛을 비추며 주님의 영광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은 우리가 가장 주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아멘하며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주님의 빛을 비출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주님의 빛을 비추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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