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연구

사사기 (13)- 사사 돌라와 야일

비전의 사람 2023. 2. 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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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3)- 사사 돌라와 야일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 삼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10:1).

 

사사기는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생애를 다룬 후에 사사 돌라와 야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사기 중간에 쉬어가는 막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사사 입다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우리는 돌라와 야일에 대한 배경이나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돌라는 잇사갈 사람이고 야일은 길르앗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돌라의 신실한 섬김이 주는 평안(1-2).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 삼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10:1).

 

사기는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거한 곳은 에브라임 산지 사밀이었습니다. 사밀이라는 곳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부아에 대하여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돌라의 시대에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안을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돌라는 사밀에 거하며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삼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아비멜렉 이후에 입은 이스라엘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는 큰 전쟁으로 영웅이 된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세우신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직무를 다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평안을 주시며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교회나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신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교회가 큰 위기가 찾아올 때에 사람들은 흔들리고 자리를 이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직분과 사명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목장을 인도하고 가정을 세워감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하여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돌라와 같이 변함없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돌라와 같이 뛰어나지 않지만 어려움의 시기에 다른 생각하지 않고 사명을 지키며 나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고 필요시 심방하고, 교회의 여러 사역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려울 때에 교회와 마음을 합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평안입니다. 인생에서 큰 위기를 피하여 살아간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위기를 피할 수가 없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의 시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2. 야일이 주는 위험의 경고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 이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10:3).

 

야일은 길르앗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으로서 오늘날의 요르단 지역입니다. 그곳은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된 곳이었습니다.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가나안에 오는 길에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물리친 후에 얻은 땅을 기업으로 차지했습니다. 그곳은 목초가 좋아서 목양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들 세 부족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 정복 전쟁을 마친 후에 자신들의 지파로 돌아갔습니다.

 

야일은 길르앗에서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아들 심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아봇야일이라 칭하더라.”(10:4). 야일의 시대는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시대가 항상 전쟁을 하며 고통을 당하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돌라와 야일의 시대는 평화를 누리며 번영하는 시대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길르앗 사람 야일은 아들 삼십이 있엇고 모두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야일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드온과 같이 삼십 명이나 되는 많은 아들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야일은 사사이지만 기드온과 같은 방향으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는 삼십명이나 되는 아들들에게 모두 성읍을 주어서 마치 왕처럼 행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의 아들들이 각 성의 성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일은 사사로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복을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 자손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일이 물질을 추구하면서 영적인 가르침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야일 이후의 시대는 이스라엘이 다시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사사기 106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10:6).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블레셋과 암몬 자손에 넘기셔서 고통하게 하셨습니다.

 

사사기는 사사 야일이 살던 곳을 하봇 야일이라고 지칭했다고 했습니다. 햐봇 야일이라는 곳은 야일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면서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녀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적으로 실패하면서 그가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 자손은 우상 숭배의 악한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3. 우리에게 찾아오는 기회와 위험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환경들을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에서 위기와 고난을 겪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평안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인생도 고난에서 예외인 경우는 없습니다. 삶에는 아픔과 고통, 병듦과 스트레스와 관계의 어려움 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에서 종종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곤 합니다. 이 시기에는 삶이 여유롭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마치 기드온과 아비멜렉 시대의 이스라엘 자손은 전쟁과 독재자로 인하여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라와 야일의 시대에는 이러한 고통에서 자유하며 평안을 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쉼을 주시는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일주일간 일한 후에 안식일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안식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을 주시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지킬 의미에서 자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하루 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우리의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날인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동안 아비멜렉의 통치의 기간에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세겜의 사람들을 살육하는 사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안식과 쉼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통치를 마감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돌라와 야일이 다스리던 시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치유하는 기회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돌라는 지혜롭게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림으로 그 땅에 평안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돌라는 이스라엘 자손이 평안하게 생활하도록 지혜롭게 통치한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의 시대에 찾아오는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에 안주하며 하나님을 잊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기 시작하면 세상의 가치에 몰입하며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야일은 평안의 시대를 누리면서 과도한 사치와 권세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약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부유함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미지근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5-17).

 

라디오게아 교회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었기에 그들의 신앙도 미지근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내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경고하신 말씀을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평안한 가운데 미지근하다면,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9)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크라니아는 매일 도시에서 장례식이 열려서 울음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예배할 수 있고 지체들과 교제하며 은혜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기독교 학교인 에즈버리 대학의 부흥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지난 28일에 19명의 학생들이 채플 후에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이곳에 성령님의 강한 임재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한 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구하며 기도하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했는데 성령님의 강한 임재를 경험하기 위하여 미국 각지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예배에 수천명이 참석하여 부흥을 경험하고 있으며, 바깥에는 약 2만명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하여 8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계속해서 수천명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육체를 만족시키는 일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구하며 영적인 부흥을 위하여 더욱 기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에게 참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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