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비전의 사람 2023. 8. 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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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아가는 삶(2: 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2;5-6).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인격적인 부분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성령의 열매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의 열매가 바로 인격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이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표출되어 질 때,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때, 그곳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과 영광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형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1.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신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한 종의 모습입니다. 겸손한 종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시며,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5-8)

 

자기를 낮추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높여서 존재를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꺼이 낮은 위치에 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자신을 비우셔야 하는 이유는, 그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양으로 변화되시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셨을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능력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셨기에,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아셨기에 인간이 되시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시며 사랑이 한 없이 많으신 분이시기에 자신을 비우시기를 결단하시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도 고위관리나 종교적인 지도자 반열에 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낮은 종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기에, 우리와 같은 분이 되셨고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시기 위하여 자신의 지위, 권세, 능력 등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비우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며, 시간을 필요로 하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컴퓨터에서는 삭제를 누르면 모든 내용물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죄의 뿌리와 소욕, 탐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제거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아픔과 고통, 연단을 통하여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신의 생각과 주관 등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5)

 

하나님보다 높아지거나 대적하는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비워야 할 마음의 요소들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죄의 뿌리는 교만인데, 이 교만은 마음의 욕심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욕심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욕심으로 인하여 정욕에 빠지고, 죄에 빠져서 결국은 인생을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울왕의 경우가 이러한 경우가 됩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욕심이 자신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사울왕은 자신에게 있는 소중한 것까지 잃어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고자 하는 강한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 7)

 

자기를 낮추는 목적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섬기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3: 13-14)

 

발을 씻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그리고, 발을 씻어야 합니다. 이와같이 남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수고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중독 경향이 있습니다. 권력은 파워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권력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인 파워를 얻고자, 열심히 정치적인 역량을 키우고 인맥을 세워가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인 파워를 얻고자, 열심히 경제 활동에 전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적인 파워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파워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실 때, 권세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는 무엇입니까? 권력을 통하여 자신의 자아를 만족시키고 군림하려고 한다면 이는 세속적인 것입니다. 성경적인 가치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섬김의 목적을 위하여 쓰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권력은 세속적이라고 터부시 한다면 누가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면, 국민들을 섬기고 정직하게 통치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살아가는 경우가 더욱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섬김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섬김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게 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2: 3-4)

 

관계는 윈-윈 의 관계가 이상적입니다. 내가 욕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는 얼마가지 못해서 친구들이 떠나가고 사람들이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섬기며 도와주는 관계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가 있다면,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섬김의 정신이 살아날 것입니다.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늘 1% 희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이 세워질 때 그 은혜는 서로 채워지게 됩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음은 무척이나 소중한 삶이 됩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11: 1-2)

 

전도서의 말씀은 식물을 자원함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때가 되면 그 베푼 미덕과 관용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식물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신이 재앙을 만났을 때 여러 사람들이 와서 도와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8)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 때,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향유를 부어 주님을 기념하는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0-23).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유대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로마의 군사로부터 모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욕하시거나 위협하시거나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히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주님은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마음으로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협하고 채찍질 하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조롱한 로마 군사를 용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도 자신을 죽인 로마 군사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주님의 기도로 십자가 근처에 있던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스데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일어나 그를 붙잡고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쳐 죽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마지막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에게 돌을 던진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59-60). 스데반은 주님의 마음을 품은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온 몸에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에 자신에게 돌을 던진 자들의 죄를 용서하기를 기도하며 순교했습니다. 스데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현장에 있던 사울을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을 위한 큰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저희는 여수의 손양원 목사님 순교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손양원 목사님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용서에 대한 교훈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애향원에서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시면서 주님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여순 사건 때에 손동준, 손동인 두 아들이 안재선이라는 죄익 학생에 의하여 순교를 당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두 아들의 순교 앞에서 마음이 녹아내리듯 고통중에 계셨지만, 그 분은 도리어 하나님께 두 자녀가 하나님께 순교의 제물로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처형장에 끌려가던 안재선이라는 학생을 선처하여 석방하도록 요청했고, 그분의 요청에 의하여 안재선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용서하시며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재선은 후에 목사가 되었고, 그 분의 아들들도 목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손양원 목사님은 6,25 전쟁 중에 복음 사역을 하시다가 공산군에 끌려가 순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손양원 목사님을 통하여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용서의 위대한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순종하기를 배우셨습니다. “그는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5:8). 예수님께서 순종하셨던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사역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의 탄생에 대하여 천사는 증거하기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 21) 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의 구원을 향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복종하심으로, 그 목적을 위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사시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분명한 목적을 선언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9: 10). 예수님은 목적을 분명히 선언하시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그 목적을 위하여 열두 제자를 삼으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셨던 목적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뜻을 받들어, 그 뜻을 성취해 나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 10)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이 그 분을 통하여 성취되도록 삶의 권리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자라갈 때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아는 것과 믿은 것에 하나가 되어 자라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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