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지혜로운 인생이 되는 비결 (시편 90편)

비전의 사람 2024. 3. 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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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생이 되는 비결 (시편 90)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시편 90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의 지경까지 40년간 인도해낸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모세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아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지난 40년간 애굽의 궁정에서 왕자로 성장하며 애굽의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배운 자였습니다. 그리고 40년은 미디안의 광야에서 도망자로 지내며 덧없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풀과 같이 모든 영광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인생을 묵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40여년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크신 인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인생들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통하여 시편을 기록하며 하나님께서 살아갈 날을 계수하며 지혜의 마음을 얻어 사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90:1-2).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주이셨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90:2).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구원자이시기도 합니다.

 

다윗은 시편 70편에서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70: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라는 입술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은 그 분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피조물로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존재입니다. 모세는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90;1)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대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거처가 되신 것은 주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시는 은혜를 표현한 것입니다.

 

온 세상에 홍수가 내려 세상이 멸망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한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도록 하시고 그 곳에서 거하며 홍수의 심판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위로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서 장막에 거하야 했습니다. 주위에는 아말렉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들이 강대한 도시 국가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성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거하도록 처소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큰 자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도 강한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간을 지낼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침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의 양식이 되게 하셨고, 바위에서 물이 흘러내려 갈증으로 고통하는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주님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15:4). 주님이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셔서 거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 안에서 처소를 마련하여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까지 지키셔서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처를 마련함으로 인하여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티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90:4). 하나님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에 죄의 결과로 찾아온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흙으로부터 왔으니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갈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밤의 한 경점과 같습니다.

 

모세는 인생을 잠간 자는 것에 비유했고 아침에 돋는 풀에 비유했습니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홍수로 쓸어가듯이,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40:6-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여 모든 말씀을 이루어가실 가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들의 풀이나 들의 꽃과 같아서 순식간에 시들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뿐만 아니라 사람이 평생에 이룬 업적이나 건축물도 모두가 사라지게 됩니다. 바벨론의 화려했던 건축물은 지금도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웠던 위대한 건축물도 모두가 땅 속에 유물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화려한 도시를 세웠지만, 그가 남긴 유적은 모두 땅 속 깊이 어딘가에 존재할 뿐 그 명성은 역사속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위대한 건축물인 콜로세움 경기장도 모두가 유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모두가 풀과 같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위대하심, 즉 광대하심을 바라보며 그 분을 영원히 찬송하며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며 그 분의 이름을 높이기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90:8).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나약함은 풀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지만, 또 한편 사람이 흙이나 풀과 같이 미약한 존재가 된 이유는 사람이 범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는 탁월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분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이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죄라는 무서운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죄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가증스러운 것이어서 사람은 죄의 결과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l 90:7). 모세는 하나님의 분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죄의 결과는 온 인류에 사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지만, 죄를 범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형벌은 사망인 것입니다. 죄는 아담의 모든 후손에 깊이 뿌리내려 태어났습니다. 다윗도 고백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라고 했습니다. 다윗과 같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죄악 중에 태어났기에 그의 삶에서도 죄를 범하는 어리석음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주의 노에 소멸되고 주의 분노에 놀랐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두고 한 말인가요? 그것은 바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대가를 두고 한 말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구원을 얻은 백성이 되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그 분의 영광을 보았고,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십계명과 율법을 소유한 백성이라도, 그들의 삶에서 찾아온 죄의 유혹을 결국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모세를 대적했으며, 특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단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은 결국 광야에서 38년간 방황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그들의 불순종의 죄는 무덤을 광야에 남기는 슬픔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레위 지파를 통하여 삼천 명을 죽게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들이 범죄하며 땅이 갈라지고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악과 은밀한 죄를 무도 빛 가운데 두셨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90: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고 아무리 은밀한 죄라도 빛 가운데 두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은밀한 죄를 범하고 숨기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가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어두움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아침의 태양이 비치면 온 만물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에는 죄가 숨겨질 순 있어도 하나님의 빛 앞에서 모든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90:9)라고 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우리의 인생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화려함이 마쳐지고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모든 태어난 사람에게는 자신의 무덤이 있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하나님께 속한 금과 은, 외투를 훔쳐서 자신의 장막 아래에 숨겼지만,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모두가 드러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다윗이 밤에 은밀히 행한 밧세바와의 간음을 숨기려 했고, 그녀의 남편을 전쟁에서 죽게 한 것을 숨기려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났고 빛 가운데 밝혀지면서 다윗의 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신약 시대의 초대 교회에서 아냐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일부 숨기고 거짓말을 함으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속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그들의 삶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가 범람하듯이 죄를 홍수처럼 범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법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사회적인 규범 아래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음란하고 동성애가 활보하고 있으며, 탐욕에 물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의 가치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섬기는 것에서 떠나 자신의 배를 채우기게 급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2:5).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를 머리에 쌓으며 회개하지 않고 강팎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신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제는 죄의 길에서 떠나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길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죄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하여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풍성한 교제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죄나 은밀한 죄를 주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범하고 그 죄에 대하여 성령께서 알게 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모세는 우리의 인생의 년수가 칠십이며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평균 연령이 800 살 정도가 되었습니다. 무드셀라는 969살을 산 인물로 가장 오랜 기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홍수 이후로 사람의 수명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아브라함은 175살을 살았고,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생존하며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지경까지 인도했지만, 당시의 수명은 칠십이었고 강건하면 팔십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수명은 평균 75-85 정도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살아도 날아가는 것과 같이 빨리 세월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자랑은 결국 수고와 슬픔 뿐인 것입니다. 수고와 슬픔만 남는 인생을 잘 살아가는 비결은 바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계수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화살과 같이 날아가기에 순식간에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농부는 자신의 농장에 있는 과일 나무의 수를 알고, 자신의 우리에 있는 소나 돼지의 수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는 매일의 월급이나 수입의 금액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인생의 날을 계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은 무덤의 문을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코 길지 않고 짧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섰을 때 우리의 마음에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 뿐 있습니다. 특히 수명이 길어진 이 시대는 수명은 연장되지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치매와 각종 질병으로 고통하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고와 슬픔의 인생을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90:11). 인생이 두려워야 할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것입니다. 그 심판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는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는 날이 있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날을 계수하여 지혜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지혜의 마음은 무엇인가요?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9:10). 우리의 인생의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심이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이며 그 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경외하는 것입니다. 욥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악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28:28). 우리는 자신의 날을 계수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의뢰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90:13-14). 하나님의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시며 지혜이시며 능력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기에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된 우리에게 아침마다 인자를 베푸셔서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며 풍성하게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인자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빈다. 모세가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나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90:16-17). 모세가 하나님의 행사와 영광을 자손들에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삶은 기도에서 시작하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마음은 주님을 닮아가는 종의 마음을 갖게 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수고와 슬픔이 그 인생을 다스리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삶은 평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90:14). 우리의 삶의 중심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영광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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