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주 안에서 하나됨이 주는 은혜 (시편 133편)

비전의 사람 2024. 4. 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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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하나됨이 주는 은혜 (시편 13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을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133 ).

 

시편 133편은 우리에게 친숙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한다는 의미는 영어로 ‘dwell in unity’로서 연합하여 거주한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dwell in unity’의 의미지는 군대에서 군인들이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군가를 부르며, 같이 훈련하는 가운데 군인으로서의 동질감과 전우애를 키워서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또는 하늘을 나는 철새가 수백마리가 한 대형을 유지하며 같은 방향으로 향하여 날아가는 모습에서 그 이미지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수천 km 의 거리를 비행하면서도, 조금도 그 대형을 흐트르지 아니하며 모두가 같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을 향하여 날아갑니다.

 

광야 시대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들이 동서 남북으로 장막을 치며 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의 나라로서의 일체감을 가지고 같은 마음으로 거주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창조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질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곳에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봄에 산에 가면 그 곳에는 진달래나 벚꽃이 활짝 피어 있고, 새가 노래를 부르고 있고, 시냇물이 흐르며 그 땅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땅에는 푸릇 푸릇한 식물이 힘차게 싹을 내며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있는데, 그 질서는 다양한 피조물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만물의 하나됨과 조화를 통해서 생겨나게 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본질은 바로 연합 또는 unity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로 존재하십니다. 그 분을 통하여 창조된 모든 세계는 조화와 하나됨을 통하여 즐겁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도 하나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오늘 시편 133편이 주는 영적인 교훈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즉 우리가 형제로서 연합하는 것이 소중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며 연합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의 하나됨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33:1).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형제가 연합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자녀들이 한 마음으로 서로 연합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이며 자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지체들은 주 안에서 연합할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며, 우리의 마음에는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선하고 아름다운고의 의미는 선하고 good 즐거운 pleasant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서로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먼 여행을 떠났다가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여행을 가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마음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섬기는 기회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때로는 각자가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서로 마음이 상하고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분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녀들을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셔서 그 분의 몸을 이루셨습니다. 그 분의 몸으로 세워지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는 곳에서 마음에 즐거움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과 분열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의 중심에는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마음이나 죄와 연합하여 행하는 것은 복음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다윗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의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찬양한 것은 그의 가정에 일어난 분열과 반목의 아픔을 이해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은 압살롬이 암논이 행한 부도덕한 일에 적개심을 품고 그의 형제를 살해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구나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에게 반역하고 그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압살롬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다윗의 왕좌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왕권을 가로채려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지만, 그의 자녀들은 서로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진리는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시편 133편의 말씀처럼 연합하여 동거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하는 삶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포도 나무에는 가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연결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이와같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각자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셔서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여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연합하며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가 되어 함께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받으시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연합할 때에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예배할 때에 예배의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연합하여 함께 교제하며 친교할 때에 그리스도가 주시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으로 모이거나 제자 훈련으로 모이거나, 찬양대나 각종 사역으로 모일 때에 분쟁하는 마음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연합할 때에 하나님이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온전히 연합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133:2).

 

시편 기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을 거룩한 기름을 아론에 붓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133:1-2). 형제의 연합과 아론의 기름부음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요?

 

다윗은 대제사장인 아론의 머리에 붓는 관유를 형제의 연합과 연관해서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8장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설명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관유를 머리에 붓는 것이었습니다.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고.”(8:12).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은 그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섬기게 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머리에 부은 기름은 머리로부터 시작해서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리며 온 몸을 적셨습니다. 그의 기름부음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기다려온 하나님의 종은 메시야였습니다. 메시야의 뜻은 기름부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역을 감당하실 분인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시는 사역중의 하나는 바로 교회와 하나가 되게 하는 연합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교회를 향하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평안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책임은 하나 되는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말씀과 연합하지 않고 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와 연합된 삶은 교만하게 하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죄와 연합되면 그러한 연합은 곧 좌절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 그리고 진리 안에서 연합하는 것은 그 연합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우리의 연합의 이유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4-5).

 

우리의 하나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영적인 연합으로 하나가 되어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진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유를 통일하시듯이, 그 분의 몸된 교회를 통일하셔서 하나됨으로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며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1-2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연합할 때에 우리의 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아론의 기름이 수염으로 흘러 온 몸에 흐르는 것은 성령의 은혜가 온 몸으로 흘러 넘치게 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론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집에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섬길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연합할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은혜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쟁이 가득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분쟁이 없이 하나가 되어 연합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우리는 주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합을 위해서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며, 같은 뜻으로 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와 마음을 합할 때에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사역에 참여하는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자는 교회가 믿는 믿음을 따르고 영적 지도력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는 믿음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4:12-1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룰 때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며 교회에서 사역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거룩한 교회와 하나되게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은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사랑이 우리를 충만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연합하여 예배하며 교제하는 것은 사랑으로 인한 기쁨이 넘치게 합니다.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듯이,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서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는 은혜가 있게 합니다.

 

3. 우리의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게 하는 비결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133: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연합하여 주님을 섬기는 곳에 복을 주십니다. 다윗은 형제의 연합이 주는 영적인 의미를 헐몬의 이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133:3).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산은 해발 2700 m의 헐몬산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건조하고 사막 기후가 많지만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간 물이 요단강으로 흘러가고, 그 물이 사해까지 흘러가 이스라엘이 농사를 짓고 포도 농장을 할 수 있는 물의 근원이 됩니다. 특히 시온의 산들이란 이스라엘의 산들로서 사마리아에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지역이 모두 해발 800 m 의 산악 지역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곳 산에는 올리브나 무화과, 포도 나무 등의 다양한 과실 나무를 재배하여 가을에 추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산이나 들에서 농사를 지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이유는 헐몬산에서 흘러 보내는 이슬과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헐몬산에서 흐르는 물은 갈릴리를 채우고 요단강으로 흐르며 그 주변의 땅을 비옥하게 합니다. 그리고 헐몬산의 이슬이 이스라엘 전역에 내려서 아침마다 이슬로 인하여 나무들이 자라고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 열매를 맺게 하는 수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의 비옥함이 높은 산에서 보내는 이슬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복을 내려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이 세우신 종과 마음을 합하여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의 시대는 모세와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여호수아와 함께 마음을 합하여 순종함으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는 다윗과 마음을 합하는 자들을 통하여 영광스러운 이스라엘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을 합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헌신할 때에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하나됨의 결과는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4-5). 주님께서는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것은 그 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며 그 분의 몸인 교회에 거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려면 모진 환경을 이겨야 합니다. 때로는 태풍이 한번 지나가면 약한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 가지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뭄이 찾아와 마르면 포도 나무에 붙어 있기가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환경을 견디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추수의 날에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태풍이 찾아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을 도전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역경이 찾아오기도 하고 시험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합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게 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헐몬산의 이슬로 이스라엘의 산들과 평야를 비옥하게 하여 열매를 맺게 하시듯이, 우리가 연합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게 하는 통로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133:3). 하나님께서는 형제가 영적으로 연합하는 곳에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 복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흘러가게 하는 사랑과 능력이며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가게 하는 참된 생명입니다.

 

이러한 영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리고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하며, 지체들과 연합하게 함으로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합하는 삶은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넘치게 합니다. 높은 헐몬산의 이슬이 온 이스라엘의 땅을 적시듯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우리 안에 흘러넘치게 되고 그 넘치는 사랑과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는 통일성에서 그 분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교회의 모습도 다양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통일성을 이룰 때에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며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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