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참된 부요함은 믿음에 있습니다 (시편 49편)

비전의 사람 2024. 4.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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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부요함은 믿음에 있습니다 (시편 49)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49:6-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합니다. 바위를 등반하는 climer 는 손 끝과 발 끝에 닿는 바위의 조그마한 틈에 의지하여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높은 바위를 오릅니다. 자칫 의지했던 바위의 틈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위험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선 이 땅이 견고하게 집과 삶의 터전을 지탱해주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아니면 재물을 의지하는 가에 따라서 지혜로운 삶과 어리석은 삶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을 통하여 이 땅에서 향략을 누리던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갔지만, 나사로는 가난한 자의 삶을 살았지만 죽어 주님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한다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삶에서 우리가 택하고 싶은 삶은 어떠한가요? 우리는 아무도 지옥에 간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거지 나사로가 더욱 복된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의지하고 잔치를 벌이며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올 지옥의 심판에 대하여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거만하게 행하며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들어야 할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며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명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우리의 믿음의 가치를 더욱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찌어다”(49:1-2)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비록 그 말씀이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할 수 있지만,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배워야 할 참된 지혜를 말씀을 통하여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유익이 되거나 흥미로운 사건들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에 유익한 소식들을 듣고 싶어하고,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 재테크나 투자에 대해서 듣고 싶어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정치에 관한 소식이나 세계 정세에 대해서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진정 알아야 할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만 한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세상의 지혜를 뛰어넘은 참된 지혜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49편의 말씀을 들어야 할 자는 누구인가요? 시편 기자는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찌어다”(49:2)라고 했습니다. 귀천 빈부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나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자들, 그리고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들 모두가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낮은 자나 가난한 자에게는 격려와 위로를 주게 될 것이며, 높은 자나 부유한 자는 경고를 들으며 겸손해 지게 될 것입니다.

 

시편 49편의 말씀을 잘 듣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얻어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49:3)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생각으로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감동으로 주신 말씀을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말하고, 그 지혜를 마음으로 깊이 묵상함으로 명철을 얻는 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혜와 명철을 얻는 비결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마음으로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시편 49: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말씀을 비유로 주셨기에, 시편 기자는 비유로 주신 말씀을 잘 듣고 이해한 후에 그 말씀을 수금으로 부르는 시로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지혜를 시로 표현하여 듣는 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2.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재물은 아무도 사망에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49:6-7).

 

시편 기자는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49:5)라고 했습니다. 이는 죄악이 자신을 따라와 공격하던 인생의 어두운 밤에 자신이 어찌 두려워하랴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죄악은 인생의 환난 또는 어두움의 시절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환난의 날이 찾아오곤 합니다.

 

숲속의 뱀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을 물어 상처를 주듯이, 세상에서 우리의 뒤꿈치를 물어서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속여서 시련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힘을 가지고 빼앗아 고통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러한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위협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여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49:6-8). 만일 우리를 위협하고 시련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떠할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부를 의지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떠할까요? 우리는 그들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삶의 반석으로 삼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재물을 의지하고 자신이 가진 풍요함으로 자랑하는 자들과 우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들이 재물의 힘을 의지하며 자신을 높이려고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분의 때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물을 의지하여 높은 체 하려고 할 때도, 우리는 그들의 부와 자신의 빈곤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져다 주실 은혜를 생각하며 마음에 미소를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부요함과 권세에 위축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가져다 주는 부와 힘, 권력으로 자신을 높이려 하고 심지어는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자를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살아가기에 그들의 높음이나 거만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사람은 재물의 가치를 작게 여기고, 사망의 날에 그들의 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나하면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사망의 날에 자신 뿐만 아니라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49:6-7). 재물이 주는 한계는 사망으로 가는 형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다 할지라도 차가운 사망의 길에 선 형제를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망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 할지라도, 사망의 길에서 그 재물이 한 사람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수십조의 재산을 소유했던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 생명의 가치는 이 세상의 금은 보화와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로는 한 영혼을 죽음에서 살리지도 못할뿐더러 그 영혼을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의 제물을 하나님께 속전으로 바칠수가 없습니다. 속전이란 한 생명을 사기 위하여 지불하는 대가입니다. 즉 생명을 얻기 위하여 지불하는 대가입니다. 재물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생명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지불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우리의 생명을 위한 값은 너무나 값집니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49:7-8). 생명의 가치는 너무나 소중하기에 은이나 금같은 재물로는 그 생명을 구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며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이 우리를 위한 구속의 값인 것입니다.

 

죽음 앞에 재물이 아무런 힘이 없기에 모든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재물을 가진 힘있는 자라고 그의 몸이 썩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49: 7-10). 모든 사람은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죽어 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재력과 권세가 있다 할지라도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그 길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의지했던 재물은 자신이 죽은 후에 다른 사람이 취하게 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자신의 집이 영영히 있고 자신의 거처가 대대에 미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토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칭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아온 재물을 보고 마음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이 세상을 떠나 죽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한 부자가 농사를 지어 부유하게 되자 창고를 더 크게 짓고 평생을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0-21). 비록 부자가 남은 여생을 평안히 지낼 곡식을 모아 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에 그 영혼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가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하는 자의 어리석음은 결국 죽음 앞에 모든 부귀 영화가 떠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재물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지 못했다면 그의 운명은 가장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재물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속이 썩은 과일과 같은 것입니다. 겉은 화려하게 보이지만 속은 썩은 과일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사람들이 신기루와 실제 연못을 구분하기 힘들 듯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신기루만을 좇아 살아가곤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하며 그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산 위에 있는 안개가 일시적으로 있다가 사라지듯이 곧 자신의 손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을 목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길에서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49:12)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존귀하지만 그 존귀함이 영원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거하지 못하고 죄로 인하여 그 존귀함을 잃어버리고 낙원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졌다 할지라도 권세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서 장수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도 나이 앞에 모든 부와 권세를 내려놓고 무덤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은 안개와 같고 꽃과 같이 일시적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이 세상이 가져다 주는 부와 재물만을 의지한다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양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가운데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목자되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영원토록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그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재물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쾌락과 부만을 추구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도살자 앞에서 죽어가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 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썩어 없어질 금과 은과 쾌락과 권세를 위해서 살았다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붙들고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오직 믿음만이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양 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49:1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49:13).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하기에 사망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는 어리석음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러한 모습을 동경하며 칭찬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자신이 마주해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자신의 길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양 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하셨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49:14)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죽은 후에 지옥인 음부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부유한 삶을 두렸지만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사망이 그들의 목자가 되어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의로운 자들의 목자는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영생으로 인도하시지만, 하나님이 아닌 재물을 믿기로 선택한 자들은 사망이 목자가 되어 그들을 지옥으로 인도합니다.

 

사망의 권세가 그들을 다스리는 이유는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과 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입니다. 생명을 얻은 자들에게는 사망이 다시는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없습니다. 그들은 영생을 얻었기에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사망의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며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들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정직한 자는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비천한 삶을 살았지만 영광의 날에 이르게 되면 그들이 교만한 부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50:14). 이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며 살았던 자들은 이 세상에서 부가 주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이 낙엽이 지듯이 사라지면 그들은 죽음의 문에 들어가 음부에서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사랑했던 육체는 그의 거처인 무덤에서 흑 속에서 소멸되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그가 입었던 수의 조차도 아무런 흔적없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소망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대로 시편 기자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누릴 영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49:15).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음부의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영혼의 지옥의 권세에서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몸값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죄를 씻겨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면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우리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천국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에 잠들어 있던 우리의 몸은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구원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불의한 자가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을 보고 두려워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찌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사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49:16-19). 우리가 불신자들이 부를 축적하고 그 집의 영광을 더해갈 때에 위축되어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회의를 품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참된 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부를 누리고 세상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저가 죽을 때에 가져가는 것이 없을 뿐더로 어떠한 영광도 그를 따라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게도니아 필립왕의 후계자로 이십 세에 왕이 된 후에 당시에 페르시아와 이집트 등을 정복하여 최고의 정복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원정길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세 가지 유언을 남겼습니다. 첫째, 나의 관을 의사들로 하여금 운반케 하라, 둘째, 무덤으로 가는 길 위에 금은보화를 뿌려라, 셋째 내 두 손을 관 밖으로 나오게 하라. 이때 장수 하나가 그 이유를 묻자, 알렉산더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의사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고, 제 아무리 많은 재산과 큰 권세를 가졌어도 결코 저 세상에는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가 세상을 정복했지만 그가 관에 들어가서는 두 손을 관 밖으로 보이며 빈 손으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페르시아와 이집트 등을 정복하자 그를 칭송하기 시작했고 그를 신의 아들이라고 높이기까지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찌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49:18-19). 알렉산더 대왕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를 이집트에 건설하는 등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며 도시를 세우고 동상을 건립했지만, 그도 성경의 가르침과 같이 열조에게로 돌아가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부를 쌓고 명성을 쌓았다 할지라도 사망에 이르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고 사망이 목자가 되어 지옥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49:20)라고 했습니다. 깨닫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을 명철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있다면 지혜와 명철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이며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존귀한 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썩어질 부와 재물과 권세를 숭배하며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거하는 것에서 가장 낮은 곳에 처하는 것은 한 계단 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 최고의 권력의 자리에 앉았던 자들이 감옥에 가는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최고의 부를 누리던 자가 죄를 범하여 감옥에 가서 자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자의 삶에서 순식간에 어두움 무덤으로 가는 시간은 그리 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동물이 사냥꾼의 활에 죽임을 당하는 모습은 가장 무가치한 죽음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의 부를 숭배하며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아간 자들을 향하여 주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며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가치가 이 세상이 주는 부의 가치보다 더욱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의로운 자를 위로하시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듣고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더욱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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