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사도바울인물강해(10) - 목자의 마음을 배우라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29

사도바울인물강해(10) - 목자의 마음을 배우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한 관심과 사랑을 비유하시면서, 자신을 선한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주님은 자신의 양을 아실뿐 아니라, 그 분은 양들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 (요 10:14a). 주님은 완벽한 목자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사역을 배웠습니다. 사실, 바울은 결국 예수님과 같이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부터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의 대가를 지불하려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온유하고 따뜻한 목자의 마음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이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면서 더욱 주님과 같이 겸손한 목자로서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자신 안에서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해하면서 더욱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목자로서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우리는 2차 선교여행에서 바울과 실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사역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의 비유로, 그는 새로운 신자들을 순수한 영적 우유인 말씀으로 먹였습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자 되어 유모가 가지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7).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바울은 각 사람을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이 사역을 했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살전 2:11-12).

 

1. 바울은 3차 선교 여행중에 에베소에서 사역을 집중합니다. (행 18:23-21:16).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로 삼으며 목양을 하는 열정이 더해집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1차와 2차 선교여행 당시에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세우고자 하는 강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며 성숙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지역으로 다니며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자 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행 18:23). 바울은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믿음 안에서 뿌리 내리기를 원했습니다.

 

1.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사역의 열매를 맺습니다. (행 19:1-20, 20:1).

 

사도 바울의 목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시아의 큰 도시였던 에베소서에서의 3년간의 사역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2차선교 여행에서는 에베소서를 잠시 들르게 됩니다. 비록 그는 짧은 기간동안 방문했지만, 그는 유대인들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그 기회를 사용했습니다.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행 18:19).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왔는지는 알수 없지만, 바울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게 됩니다.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행 18:20). 바울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올 것임을 약속합니다.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 (행 18:21). 주님은 바울의 고백을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이번 3차 선교여행에는 적어도 3년간을 지내게 됩니다.

 

바울의 에베소서의 사역은 베드로의 예루살렘 사역과 유사한 방법으로 시작했습니다. 첫째, 열두명의 사람이 강력한 성령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행 19:6-7). 이는 열두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두 번째로 방문하어 이들을 만나게 되자,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성령의 능력과 사역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2). 그러나, 바울이 그들을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수년전에 사도들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의 열두 사람들은 다양한 언어를 말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에 그들이 다양한 언어로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에베소서에서의 열두 사람들에게도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같이 에베소서에서 특별한 사역을 하시고 계심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기독교 운동이 시작한 첫 번째 유대의 교회였습니다.

2) 안디옥의 제자들은 첫 번째 중요한 이방인 교회였습니다.

3)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세운 첫 번째 교회였습니다.

 

에베소서의 그리스도인들과 아시아 곳곳의 다른 도시들은 인종에서 섞여 있었기에,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과 연합됨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4-16).

 

바울이 열두 사람의 사역을 마친 후에, 그는 에베소서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행 19:8). 바울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는 회당에서의 사역에서 철수하고 이방인들을 향하여 사역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사역을 지속하기 위하여, 두란노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강의실을 얻게 됩니다. 두란노는 아마도 복음과 성령의 사역을 경험한 열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그의 설교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날마다 만났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찾아와 말씀을 들었습니다. “...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9-10).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로 오게 되면 아데미(Artemis)의 신전(로마는 디아나(Dians)라고 함)에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아데미는 그리스의 여신으로 제우스와 레토가 낳은 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순결, 다산, 달의 여신으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두란노 서원에서 전하는 바울의 설교를 들으러 왔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고 자신의 도시에 돌아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도시의 교회들이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그리고 라오디아 지역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서의 교를 비롯하여,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이들 아시아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2. 바울이 에베소에서 영적인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의 메시지에 대한 특별한 반응은 바울이 전하고 가르친 메시지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그의 사도됨과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기 위하여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 12:12).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9:11-12).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사용하신 것처럼 에베소서에서 성령충만한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행 5:15).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이방인의 사도된 바울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능력을 주심으로 사도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확증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 2:3-4).

 

예루살렘과 에베소서의 두 도시는 주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로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전 세계로부터 온 자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에베소서는 우상으로 가득한 이방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왔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사탄과 악한 영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유대의 한 제사장인 스게와의 아들들이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쫓아내려고 시도했습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행 19:14). 그러자, 악귀에 들린 한 사람이 이들 일곱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게 됩니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행 19:16). 이일로 인하여 그 소문이 신속하게 퍼지게 됩니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깊은 두려움을 주게 되는데, 특히 주술과 악한 일에 빠졌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탄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게 되고, 그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행 19:17-18). 이는 뜻하지 않은 사역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마귀에 눌린 자들의 일로 인하여 오히려 복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발판이 된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자신이 소유했던 책들을 불태우게 됩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행 19:19). 이 책의 비용은 약 오늘날 60억이나 되는 가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힘이 있게 퍼져 갔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 19:20).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와 같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에베소서의 악한 영의 역사를 경험한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권면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열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1-13).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전한 복음의 반응은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러자, 바울에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큰 질투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여러 부분에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역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두 도시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종교로부터 큰 협박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대제사장과 그의 무리들이 시기심에 그들을 협박하였고, 에베소서에는 아데미의 은신상을 만들던 이방인 사업가 무리들이었습니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행 19:24).

 

데메드리오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주요 인물이 되었습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영향력있는 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은장색(silversmith)으로서 에베소에서 큰 사업을 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사람들에게도 사업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업에 큰 피해를 입은 직공들과 영업하는 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강하게 두가지의 감정적인 호소를 합니다. 첫째, 그는 자신들의 사업이 앞으로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결국은 폐업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데메드리오는 아데미에 대한 종교적인 신앙에 호소하며, 여신 아데미의 위엄이 땅에 떨어질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행 19:27).

 

에베소서와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게 되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을 고소하며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수년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를 지키기 위하여 스데반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는 바울이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서기관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폭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을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로마정부는 에베소의 정치지도자들에게는 예루살렘의 산헤들린 공회에게 주었던 사형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서기관은 성난 군중들에게 경고하며 폭동에 대하여 책임을 묻을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게 됩니다. 로마 군대가 개입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군중으로 결국 흩어지게 됩니다.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행 19:40-41)

소요가 그치게 되자, 바울은 제자들을 만나 믿음안에 거하라고 권면하게 되고 에베소서를 떠나 선교여행을 지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바울의 사역을 통하여 그가 보여준 목자의 마음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2. 바울은 밀레도에서 목자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의 목적은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행 20:16). 오순절은 성령이 수년 전에 임하여 강력한 초대 교회의 역사가 일어났던 때입니다. 시간안에 도착하기 위하여, 바울은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결정합니다. (행 20:16).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직도 아시아의 도시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소에서의 7년의 사역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에베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결국, 그의 배는 밀레도(Miletus)에 정박하게 되고, 그는 에베소서의 장로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거기에서 만나자고 요청합니다. 이는 단지 전도자나 신학자로서가 아니라, 목자로서의 바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바울은 겸손하고 긍휼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19a,31)

 

이는 여러면에서 바울의 초기 사역 때와는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그는 더욱 깊고 성숙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욱 성숙했으며, 그의 긍휼은 그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열정적이며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숙하여 자라가면서, 그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가 더욱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전한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의 5장 22-23절의 성령의 열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증거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2. 바울은 타협하지 않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행 20:20, 27).

 

바울은 목자로서의 마음을 배워가면서, 그는 자신의 담대함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담대함에 긍휼과 온유한 마음을 더하면서 균형을 이루어갔던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이나 거절을 피하기 위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했습니다. 바울은 목자로서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2) 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가르치기를 잘한다는 의미에 대하여 디모데후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딤후 2:23-24).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온유함으로 가르치라고 교훈합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딤후 2:25).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서를 기록하면서 사랑으로 진리로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그들을 권면할 권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3. 바울은 편견이 없이 영혼들을 사랑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 20:2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분은 단지 유대인의 구세주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 주님은 다른 양들이 있어 인도하여야 하며,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방인들도 주님의 양이 되어 따를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한 귀로 듣고 흘러 보낸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언급한대로, 베드로가 자신의 편견을 버리는데도 수년이나 걸렸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구원받은 후에, 그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된 동료 유대인들에게 편견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장님이 되어 이끌려간 후에 삼일 후에 자신의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에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영적인 눈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해야 할 하나님의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이 시점부터, 바울의 좁은 시각이 깨어지고 인종과 문화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첫 번째 서신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6-28).

 

4. 바울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그는 에베소의 장로들과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달려왔던 삶의 모습을 나눈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소요가 났을 때에 생명의 위협이 있었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희생적인 태도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바울의 2차 투옥기간에 바울은 자신의 집이 아닌, 로마의 지하 감옥에 투옥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형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는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과 나누었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임을 언급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6-8).

 

5. 바울은 양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역을 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바울은 사역에서 포커스를 잊어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영적인 리더라 할지라도 바울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육체의 정욕으로 살며, 곁길로 가기 쉬운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악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그는 목자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29-30). 흉악한 이리인 사탄이 와서 주님의 양떼인 교회에 침투하여 미혹하게 할 것임을 경고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깨어 있으라고 경고합니다. 바울은 삼년동안 그들 가운데 사역을 하면서 목자로서 삶의 큰 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있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1).

 

6. 바울은 물질을 탐하지 않고 사역을 했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행 20:33-35).

 

바울은 재정적인 면에서 흠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순수한 동기로 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 2:9).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돈이나 물질적인 선물을 받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않았지만, 빌립보의 성도들로부터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 4:16).

 

무엇이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바울의 사역의 접근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이렇게 믿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딤전 5:17). 배나 존경의 의미는 물질적인 후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다시 강조한 것입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딤전 5:18).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바울을 고소하였을 때는 그러한 상황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바울이 물질 때문에 사역을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처합니다. “다른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고전 9:12). 바울은 돈 때문에 사역을 한다는 비방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후에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젊은 사역자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3.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바울의 목자로서의 모델은 우리가 섬기는 직분에 관계없이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사도행전과 그의 서신으로부터 배우는 원리들입니다.

 

1. 하나님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삶에 적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holy) 옳고(righteous) 흠없이(blameless)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살전 2:10).

바울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사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서 모델링이 대화의 기초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배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그리스도가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삶을 원한다면, 그들에게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기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기도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친절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경을 읽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델링 교육인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삶에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들이 삶을 통해서 예배와 기도, 섬김의 삶을 보여준다면, 새로운 가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삶을 보여주는 것이 가정의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경건과 영적인 삶에서 본이 됨으로 영적으로 자라가는 새로운 가족들이 배우며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잇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제시한 영적인 기준을 마음에 깊이 담아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편지(딤전 3:1-7, 디 1:5-9)를 보내면서 교회의 리더가 되는 영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기준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고자 합니다.

 

1)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함(좋은 명성을 지님)

2) 한 아내의 남편이 됨(도덕적인 순결을 지킴)

3) 절제하며(말과 행실의 조화를 이룸)

4) 근신하며(지혜롭고 겸손함)

5) 아담하며(본이되는 삶)

6) 나그네를 대접하며(섬김과 관대한 삶)

7) 가르치기를 잘하며(온유함으로 가르침)

8)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술을 마시지 않음)

9) 구타하지 아니하며(학대하지 않음)

10) 관용하며(사랑이 많고 친절함)

11) 다투지 아니하며(논쟁적이지 않음)

12)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물질주의가 아님)

13) 자신의 집을 잘 다스림(좋은 남편과 아버지)

14) 외인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은 자(불신자들에게 좋은 간증을 얻은 자)

15) 제고집대로 아니함(자기 중심적이거나 통제하려는 성격이 아님)

16) 급히 분내지 아니함(죄를 짓게 하는 분노를 피함)

17) 선을 좋아함(선한 행실을 따름)

18) 의로우며(분별력있고, 공정함)

19) 거룩하며(거룩하고 의로움)

20) 새신자가 아님(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아님)

 

사도 바울은 영적인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적인 리더인 목회자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닮아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며 리더로서의 영향력을 행세해야 합니다. 그러나, 삶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전하는 진리의 복음이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인 성숙함을 이루어 더욱 자라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