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사도바울강해(9) - 성숙함을 향하여 나아가라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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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강해(9) - 성숙함을 향하여 나아가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14).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에게 신뢰와 지지를 보냈으며, 주님의 사역에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에, 다른 제자들이 바울을 신뢰하지 않을 때에도 바나바는 바울에게 신뢰를 보내주었습니다. (행 9:26-27).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협력 사역자가 필요할 때에 다소의 바울을 찾아서, 그로 하여금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돕기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행 11:25-26). 그리고, 안디옥 교회가 유대의 기근으로 큰 어려움을 만나자 물질의 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안디옥 교회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모금된 물질을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행 11:30).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신뢰하며 협력하는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우정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첫 번째 선교여행의 시기였습니다. 바나바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바울로 하여금 선교팀을 이끄는 지도자로 세움으로 사도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선교하는 지역에서 극심한 핍박들을 경험하였지만, 그들은 항상 하나됨을 지키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이 삼년간의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이 이방인들 중에서 행하신 사역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때 자신들은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낮추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행 14:27).

 

서로를 향한 헌신은 그들이 할례의 논쟁이 있을 때 더욱 돋보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 앞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구원을 변호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선교팀에서의 자신의 리더십의 위치를 내려놓고, 바나바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나바가 유대인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더욱 신뢰를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5:12).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하여 안디옥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행 11:22). 바울에게는 자신이 유대의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소명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리더됨을 보여주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역이 성취되어 가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공회의 모임의 결과로, 이방인들의 형제들에게 보내줄 편지가 쓰여졌고, 율법과 은혜에 대한 이슈가 정리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돌아와서 함께 사역을 감당했으며, 주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행 15:35).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에서는 큰 갈등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바울이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며 동료 선교사로서 함께 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좋은 친구로서 우정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1.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의 문제로 큰 논쟁을 하게 됩니다.

 

갈등은 바울이 바나바에게 그들이 사역했던 곳으로 다시 가자고 제안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즉,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행 15:36).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이 복음으로 세워졌지만,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은혜의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쫒았으며, 심지어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적도 있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들의 형편을 보고, 그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갈라디아의 성도들이 자신이 보낸 서신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 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전에 거짓 교사들과 복음의 진리에서 혼돈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강한 메시지를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던졌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제안한 선교여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선교여행에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했습니다. 비록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가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마가에서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마가의 집에 머물며 그와 많은 대화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눈물로 뉘우치며 회개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자, 바나바는 마가의 깊은 반성에 공감하며,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를 도움으로 바울의 사역이 성공적이도록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이제 바나바는 마가를 도와서 그를 탁월한 사역자로 세우고자 하는 열정이 생겨난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가 자신의 조카라는 이유가 아니라, 그의 사람에 대한 긍휼의 마음으로 마가를 도와서 큰 사역자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회복하는 사역에 큰 열정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친구인 바울과의 관계가 힘들어지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나바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마가에게 너무나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젊은 사역자 마가에게 너무나 실망을 하였기에 그를 다시는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차 선교여행에서도 마가고 포기하고 돌아갈 것이라는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차 선교여행은 일차 선교여행과 같은 어려운 환경을 만날 것이며, 어쩌면 더 어려운 환경을 접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강하게 마가를 데려가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도 바울의 의견에 양보하지 않았으며 결국은 큰 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갈라서게 됩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행 15:39). 믿음의 큰 거장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으니 심하게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부르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이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르로 가고 바울은 신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행 15:39-40).

 

2. 바나바의 열정이 마가의 회복으로 결실을 얻게 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

우리는 바나바와 요한 마가가 안디옥을 떠나 구브로에 이르렀을 때에 어떤 사역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구브로로 건너가 선교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마가는 후에 서로 화해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보내게 됩니다. 그는 요한 마가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그는 사악한 네로 황제로부터 죽음을 당할 시기가 가까움을 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서신을 기록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 이번 서신을 통하여 과거에는 함께 하기를 거절했던 마가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마가는 바울에게 신뢰의 대상이었고, 더 나아가 유익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전통에 의하며 요한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가의 집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 그의 집에서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마가는 서로 신뢰하며 섬기는 동역자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마가를 향하여 “내 아들 마가” (벧전 5:13)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가 신약시대에 끼친 영향력은 성령께서 마가를 통하여 마가복음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가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진실된 신앙은 무명한 자였던 마가를 통해서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발자취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마가가 처음에는 핍박과 고난의 현장에서 위축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다시 신앙과 사역을 회복함으로 인하여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사역에 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3. 바나바는 사람을 중시하고, 바울은 진리와 사역을 중시하는 성향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 중에 누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에 대하여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참으로 어떤 결정이 올바를지는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 바나바는 사람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는 사역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사람을 향하여 신실하였고 심지어는 충성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바나바는 자신이 믿는 사람을 세우는 원리에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게 됩니다. 이러한 결단을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신실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바나바에게는 바울이 신실한 친구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바울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젊은 요한 마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하는데, 마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거절하는 바울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바울은 진리에 헌신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진리와 사역에 열정인 바울은 사람의 실수에 대하여는 초창기에 용납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크게 헌신한 영적 지도자가 요한 마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 실수를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바울의 가장 큰 강점이 그의 가장 큰 약점이 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가장 큰 강점은 은혜의 복음의 순수함을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인데, 이러한 타협하지 않는 모습이 사람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주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나 강함으로 인하여, 그 강함이 사람의 관계에서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며,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인하여 변화를 받았기에, 우리는 사람을 더욱 존중하며 사랑하며 세우고자 하는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비록 당시에는 다투어 헤어졌지만, 그들은 서로 화해를 하였고 좋은 동역자로 섬김을 주는 관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위대한 사도이지만, 그도 성장이 필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그가 위대한 사도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았지만, 오직 예수님 외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실수를 보면서, 우리는 그가 인간됨을 보면서 따라야 할 영적 모델이라는 친근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4. 바울은 마가의 교훈으로 사람의 관계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선교를 떠나게 되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이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행 15:40-41).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중에 자신의 고향인 다소에 들렀을 것입니다. 그는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사역하기 전에 적어도 7년간 사역을 했던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사역의 열매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핍박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인도했던 그 사역의 열매를 보면서, 그는 기뻐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성장할 것을 격려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소를 떠나 더베에 도착하게 됩니다. 더베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복음을 전했던 곳이고, 많은 제자들이 더해진 곳입니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 (행 14:21). 바울은 2차 선교여행에서는 믿음으로 성도들을 세우는 곳에 집중하게 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방문하면서 복음에서 타협함으로 편지를 보냈던 상황이기에 그들의 반응도 지켜보면서 믿음으로 성도들을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대면하면서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도 지적하였고, 순수한 복음의 진리에서 견고하게 서도록 교훈하였던 것입니다.

 

1)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더베를 떠나, 루스드라로 가게 됩니다. 이번에는 바울이 세 번째로 방문하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디모데라는 젊은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아마도 바울의 첫 번째 방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젊은 제자일 것입니다. 그는 바울이 없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젊은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로부터 칭찬받는 신실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선교팀에 초청하여 함께 사역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하여 함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디모데는 부친이 헬라인이었고 모친은 믿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할례의 무익함에 대하여 강하게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행 16:3).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주게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디모데의 할례를 통하여 바울이 지혜에서 더욱 자라가며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의 장벽을 없애려는 접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메시지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세워진 고린도 교회의 서신을 통해서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고전 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고전 9:19-20).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구원의 진리를 절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할례의 구원을 받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할례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할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처럼 디모데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에서의 사역은 사람을 세우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루스드라를 떠난후에, 그들은 마게도니아 환상을 통하여 데살로니가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심각한 핍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되고 결국은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됩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행 17:4).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새로운 성도의 안위와 그들이 핍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안에서 자라고 있는지 아니면 그들의 이방신에게로 돌아갔는지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아덴에 도착하자,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내어,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고,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도록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살전 3:1-2).

 

디모데는 기쁜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살전 3:6).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주 안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살전 3:8).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주님 안에서 견고히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하여 그들의 믿음이 자라가도록 권면합니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일어났던 일을 통하여 영적 성장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어머니가 자신의 아기를 돌보는 모습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가지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 2:7).

둘째,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아버지가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살전 2:10-12).

 

바울은 사람을 세우는 원리를 터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을 세움에 있어서 칼같이 자르는 모습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사람들을 세우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이 사람을 세우는 모습에서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은 디모데를 세움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합니다.

 

바울과 그의 선교팀은 2차 선교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디모데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를 격려하며 이끌어주는 바울의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한 마가와 같이 디모데도 쉽게 위축될 수 있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를 떠날 때부터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역의 어려운 환경으로부터 디모데를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사역의 현장에서 맞거나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역의 후방에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가는 일이 일어났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는 이러한 고난이 찾아오지 않도록 미리 보호를 해 준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실망하여 사역을 포기하고 루스드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장하며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요한 마가의 관계에서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디모데는 사역의 현장에서 성장하게 되고 사역이 주는 어려움의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성장한 디모데를 향하여 이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디모데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도전을 믿음으로 이길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도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1:7-8).

 

5. 오늘의 말씀이 주는 교훈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사역의 초기에는 교리와 진리에 더욱 집중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성숙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점점 성숙해져 갔습니다. 바울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 (요 1:14) 하다고 한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처음에 투옥되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영적 사역에 대하여 회고합니다. 그는 거의 삼십년간 역동적인 사역자로 사역을 한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

 

바울이 무엇을 잊고자 했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잊어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의 연약함을 잊어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숙한 삶을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는 과거의 죄와 실패가 자신의 미래의 길을 막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과 사역의 현장에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장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세우는 모습에서 증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심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될 것입니다.

 

2.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도록 순종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사람들은 각자의 기질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 생활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 중심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관계 중심의 성향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척이나 신중하며 세밀하게 일을 처리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큰 그림을 보며 일을 추진하는 경향도 있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일중심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상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그의 마음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도 했습니다.

 

바나바는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을 중요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나바도 바울과 같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관계중심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는 바울을 위하여 중재하였고, 안디옥에서는 요한 마가를 지지하며 그를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기는 비록 자신의 친한 친구와 다투기도 했지만, 그는 사람들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비록 바울이 강한 마인드의 사람이었고, 일중심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기꺼히 순복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를 기록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원리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그는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는 성숙해지면서 성령의 열매로 자신의 기질을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육신의 모습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바나바의 따뜻한 마음으로 인하여, 마가는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은 디모데와의 관계가 굳어지고, 마가와의 신뢰의 관계도 새로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항상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심은대로 거둠으로 인하여 죄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의 죄에 매여있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와 실수를 사용하셔서 우리의 삶에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기회를 주심으로 성숙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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