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기는 삶을 살아가라(롬 8:37-39).

비전의 사람 2024. 6. 15. 21:14

이기는 삶을 살아가라(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두 가지의 패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는 삶(losing life)이고, 다른 하나는 이기는 삶(winning life)입니다. 한때 우리 나라에 루저라는 삶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실패하고 낙오하는 삶을 루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기는 삶은 삶에서 자신이 목표하는 성취하며 높은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의 눈에는 루저로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 나셨을 때에 아무도 그 분을 찾아오지 않았고, 양을 치는 목자와 그 후에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엘리트의 삶과는 관계없는 갈리리 지역의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그 지역을 조롱했습니다. 당시의 엘리트 들은 예루살렘과 그 근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실 때에 유대의 관원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거나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사람들은 모두 주님에 대하여 실망했고 심지어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외면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 예수님께서는 고운 모양이나 풍채도 없어 흠모할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은 가장 멸시를 받아 고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세상은 루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외모는 루저처럼 보이셨지만 그 분의 삶은 항상 이기는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실 때에 사탄이 찾아와 유혹했지만, 주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시고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패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같은 종교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인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성경대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이 예수님을 가둘 수가 없었고, 무덤이 예수님을 가둘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일어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분의 몸은 이전의 몸이 아니라 부활의 몸인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새로운 생명인 영생을 주십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자가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게 하시도록 하늘에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이기는 자로서 우리 믿는 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모든 고난과 질고를 지시고 고통하셨지만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골로새서는 정사와 권세로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2:15)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을 패배시키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인류의 죄를 씻어주심으로 죄의 권세를 가진 사탄을 패배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권세인 사망을 무너트리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최후 승리는 하늘에서 이 땅으로 재림하시는 모습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19:13-14).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오실 것입니다. 이때 하늘의 천사들이 함께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입으로 나오는 검으로 주님을 대적하던 군대들을 물리치시고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지상 재림하실 때에 그 분은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로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셨기에 우리에게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상대로 씨름하며 이겨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겨야 할 상대가 잘못된 것이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경주 자체가 무의미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울왕은 이겨야 할 상대를 잘못 정했기에 그의 삶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죄와 싸워야 했지만, 도리어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이며 사위인 다윗을 상대로 이기려고 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동역자인 다윗과 싸웠기에 그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12:4).

 

우리가 이기는 삶이 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이겨야 할 대상이 있다면 사탄의 권세인 죄입니다. 죄는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가는 독이기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에 넘어진 자는 죄의 종으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죄의 유혹은 항상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사탄이 뱀으로 찾아와 유혹했다면, 지금은 환경과 인터넷, 쇼설 네트워크 등으로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4: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죄가 가인의 문 앞에 도사리고 있어서 가인이 나서는 순간 그를 덮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소원하는 것은 가인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죄의 유혹을 이기고 도리어 죄를 다스려야 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사람들은 죄라고 하면 단지 도적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되는 것은 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더 우선시하는 것이 있다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아담에게서 받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죄의 뿌리는 사람의 행실에 있기 보다는 내적인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15:18-19)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입으로 악한 생각이나 미움이나 거짓말과 훼방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을 다스리려고 하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완벽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 마음의 죄를 다스리면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죄를 다스려야 하듯이 삶의 행실로 나타나는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죄는 십계명을 통해서 그 뿌리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5계명인 부모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5계명의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인에 대하여 신약에서는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살인하는 것과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성적인 죄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성적인 자유 또는 방종의 시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체의 경건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고 특히 음란을 멀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의 성적인 관계는 음란의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의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것을 훔쳐가는 것을 도덕질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기나 거짓으로 다른 사람의 재산을 취하려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거래에서도 항상 정직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취하는 것은 도덕질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9계명인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으로 탐심을 멀리해야 합니다. 탐심을 품는 것은 우상 숭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의 보물에 탐심을 품었다고 문둥병에 걸리는 심판을 받았고, 아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여리고의 재물을 훔쳤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이긴다는 것은 이와같이 죄를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은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2-1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의의 병기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죄와 싸우되 피흘리까지 싸우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12:4). 이 구절은 성도들이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큰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싸우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죽기까지 고난당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성도들도 죄와 싸우는 과정에서 순교의 피까지 흘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기는 삶을 위해서 죄와

싸워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16).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13-14).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인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두움의 권세가 다스리는 나라 속에 살아갑니다. 세상은 죄가 관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적인 가치가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일서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속적인 가치와 죄로 유혹하는 정욕이 주요한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겨야 할 세상의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현대주의의 가치입니다.

 

오늘의 세대를 현대주의(Post-modernism) 세대라고 말합니다. 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상체계의 첫 번째는 이성의 역할을 부정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이성의 활동을 무시하고 느끼는 대로 살아갑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두 번째 특징은 전통적 가치를 부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부모 세대의 권위와 교회와 심지어는 성경 말씀의 권위마저도 부정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세 번째 특징은 감성주의를 표방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보다는 자신의 느낌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네 번째 특징은 이기주의를 표방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국가나 가정이나 교회나 어떠한 사회의 전통이나 권위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개인주의 사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네 가지의 포스트모던 사상체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면적으로 배치되거나 그 말씀에 저항하는 사상체계들입니다. 이들 사상체계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국가 사회와 교회와 그리고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서운 독버섯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 물질주의입니다.

 

세상은 물질적 성공과 부를 인생의 주요 목표를 삼고 살아갑니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는 소유가 행복의 척도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모두가 물질주의와 쾌락 주의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가 물질주의의 덫에 걸리면 주님이 주시는 기쁨보다 세상의 재물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주의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성적인 방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성적인 자기 권리를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성적으로 자유하는 즉 방종과 타락하는 것은 현대의 중요한 도덕적인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히브리서에서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13:4)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길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성적인 타락은 그 사회를 어둡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합니다.

 

넷째, 자기 중심적 사고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

 

우리가 이기는 삶을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사고를 함으로 가능합니다.

 

죄의 본질은 교만이며, 교만의 본질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긍하며 교만함으로 감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현대 사회가 주는 메시지는 개인주의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중심적으로 흐르게 합니다. 심지어 믿는 자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중심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2)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세상이 주는 가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12:2)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에서 너희는 생각과 뜻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변화는 우리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사고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변화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영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3:5-6). 이러한 영적인 변화는 우리의 영적인 통찰력을 얻게 함으로 세상의 가치를 이기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기는 자가 아니라 지는 자가 되는 길은 죄와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그러한 가치에 갇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기는 삶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며 죄의 유혹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는 비결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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