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사도바울강해(12) - 은혜로 경주를 마쳐라.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35
반응형

사도바울강해(12) - 은혜로 경주를 마쳐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그는 중요한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목표는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핍박이 찾아오고, 유혹이 찾아오고, 스트레스나 사탄의 반대가 찾아와도, 그는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경주를 마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인생의 경주에서 마지막에 이르게 되자, 그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의 계획은 항상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서신을 통하여 자신이 서바나(스페인)로 가기를 원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부조금을 전달한 후에, 그는 스페인으로 가면서 로마에 들러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스페인까지는 선교여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1.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항해하게 됩니다. (27:1-28:15).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하기까지 2년 동안 가이사랴에 구금되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의 요청을 존중하여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바울을 배로 호송하도록 했습니다. 누가와 아리스타고가 바울을 섬기기 위하여 바울과 동행하여 함께 승선하게 됩니다. (27:2).

 

바울의 책임자는 율리오라는 백부장이었는데, 그는 바울에게 호의적으로 대하였고, 자유를 최대한 허용했습니다. 율리오는 시돈이라는 곳에서 바울이 친구들로부터 대접을 받도록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베스도로부터 바울에 대한 믿음과 아그립바 왕으로부터 바울의 무죄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즉,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유롭게 놓아주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행해를 시작하면서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게 되고 길리기아와 밤빌리아의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항해하다 어려움을 만나 그레데의 해안의 미항이라는 곳에서 정박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위험이 있을 것임을 경고합니다.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행 27:10). 바울은 자신의 경험으로 이번 항해가 큰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경고한 것입니다.

 

바울의 심각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뵈닉스로 항해하기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 못가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바다로 떠내려 가게 됩니다. 누가는 항해의 어려움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행 27:20).

 

항해가 소망이 사라졌을 대에,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받기 됩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셨으니 ...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행 27:24, 26).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는 멜리다 라는 섬의 근처에 걸리게 됩니다. 비록 배는 부셔졌지만, 배에 승선했던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습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행 27:44).

 

멜리데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어려움에 있는 바울의 일행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특히 멜리데의 경험이 특별한 것은 바울이 경험했던 기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기적을 베푸심으로 인하여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바울의 사도들의 증거를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불을 지피는 것을 돕다가, 바울이 독사에 물리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조금도 상함이 없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보블리오라는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아버지의 열병과 이질을 기도로 고쳐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이 나서 섬의 다른 아픈 사람들도 와서 고침을 받게 됩니다. (28:8-10).

 

이는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는지는 알수 없지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그 섬에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침내 말레데 섬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수라구사와 레기온과 보디올을 거쳐 로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바울은 바울 당시에 약 2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는 거대 도시였습니다.

 

2. 바울이 로마에서 투옥됩니다.

 

바울이 시민권자이며 백부장의 호의로 인하여,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군사와 함께 따로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행 28:16). 바울은 감옥이 아닌 집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기회를 얻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집으로 로마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을 초청하였고, 거기서 그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간증과 메시지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높은 관심을 얻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행 28:23). 사도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하자, 그 말을 믿고 구원받는 사람도 있지만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원래 스페인에 가기 위해서 로마를 방문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을 있으면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행 28:31).

 

누가는 사도행전을 이 말씀으로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사역이 마쳐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바울의 로마에서의 사역에 대하여 옥중에서 기록한 네 서신서를 통하여 배울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목회 서신을 통하여 그의 삶과 사역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3. 바울은 옥중에서 서신을 기록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은 그가 로마에서 2년 동안 집에서 투옥되어 있을 때에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를 기록했다고 추정합니다. 우리는 그의 투옥되어 있을 당시에 바울이 가졌던 영적 통찰력을 배울수가 있게 됩니다.

 

1. 빌립보서

 

바울의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선물을 받은 후에 기록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믿음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에바브로디도의 편에 이들 선물을 보내게 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아마도 교회의 영적지도자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여준 사랑과 후원에 압도되었고, 에바브로디도의 희생적인 섬김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가 보낸 것은 바울의 필요를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자,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도 자신이 그 부족분을 채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비록 바울은 구체적인 것은 생략했지만, 그는 편지를 써서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 2:29-30).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물질의 선물을 보내왔을 때에,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바울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어려워 했을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자의 필요를 위해서 극한 가난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섬겼던 마케도니아 성도들을 격려했었습니다. (고후 8:1-5). 이제 그들은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바울을 섬기기 위하여 희생을 다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랑의 행위에 깊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교회 중에서 빌립보 교회가 유일하게 바울을 재정적으로 도왔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중에 데살로니가를 가기 위해 빌립보를 떠났을 때에, 그들은 필요가 있는 바울을 다시 물질의 후원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 4:16). 이제 빌립보 교회는 다시 한번 바울의 물질의 필요를 위해서 희생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실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그들이 행한 것은 천국에서 그들의 상급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희생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족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더 나아가 바울은 그들에게 주님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켜주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그러나, 바울은 이 서신서를 기록하면서, 그는 다시 자유를 얻게 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직 그 사실을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복음을 더욱 담대히 전할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이후에, 그는 누가에 기록한대로 2년간의 옥에 갇힌 이후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아마도 빌립보를 다시 방문하고 그들의 기도와 선물에 대하여 감사를 했을 것입니다.

 

2. 에베소서

 

바울이 로마의 간수로부터 쇠사슬에 매여 밤낮을 보내면서, 그는 그의 선교의 경험들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에베소서에서의 3년간의 사역을 통한 열매와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과의 만남을 추억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 바울은 장로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었습니다.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30). 바울은 이러한 예상을 했었는데, 그는 에베소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아데미 여신과 같은 우상을 숭배하고, 마술사들을 따르다가 주님을 믿고 돌아온 자들이기에,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0-11) 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연합을 강조합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4). 주님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적의의 담을 허무시고 하나의 몸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연합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골로새서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성격이 비슷하여 에베소서와 더불어 쌍둥이 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서를 향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바울은 이 교회를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골로새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들 잘못된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왜곡되어 가르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 2:8-10).

 

바울은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이는 골로새서가 에베소서와 같은 시기에 옥중에서 쓰여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빌레몬서

 

빌레몬이 골로새에 교회를 세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바울이 에베소에 갔다가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은 복음을 믿고 골로새에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자신의 가족을 주님께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정하여 다른 사람을 초청하여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빌레몬이 그리스도인이 되자, 노예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변화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잘 배우면서, 그는 자신의 노예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와 자매로 대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 (골 4:1). 그러자, 오네시모라는 그의 종들 중의 한명이 이러한 자유를 이용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빌레몬의 것들을 훔쳐서 도망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아래, 오네시모는 로마에 도착하여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바울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옥중 생활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훔친 것들을 보상도 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과의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빌 17-19, 21).

 

바울은 이 서신을 감옥에서 기록하였기에, 이 서신에서 갇힌 자(prisoner)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 풀려날 것을 기대하였고, 풀려나면 골로새에 와서 빌레몬과 함께 지낼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빌레몬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빌 22).

 

4. 바울은 마지막으로 목회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바울이 첫 번째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그는 마게도냐와 아시아로 갔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들 지역의 교회들을 방문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디도와 그레데로 가서 이들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는 목회 서신에 나오는 지역들을 언급하는데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들은 사도행전에는 언급되지 않은 지역들입니다.

 

1. 디모데 전서

 

바울은 아시아를 방문하는 중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첫 번째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 (딤전 1:3).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경고했던 일들이 에베소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지도자 중에서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었고, 자격이 않되는 사람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교회의 목회자의 자격과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설명해야 했습니다. (3:1-13).

바울은 다른 문제들에 대하여도 다루게 되었는데, 자격을 갖춘 지도자의 임명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만일 교회가 이러한 부분에서 실패하게 되면, 교회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지도자들이 영적인 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바울이 염려하던 다른 문제들은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2. 디도서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난후에, 그는 그레데 섬으로 선교여행을 가게 되고 그 섬에 여러 개의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이때 디도라는 젊은 사역자가 그의 동역자로 섬기게 됩니다. 바울이 그 섬을 떠나자, 그는 그의 동료 선교사인 디도에게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그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즉, 아직 마무리되지 않는 일들을 마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디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은 모든 성에서 영적 리더들을 임명하는 것이었습니다. “...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딛 1:5).

 

여러면에서 디도는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직면했던 같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디모데 전서와 같이 영적 지도자에 대한 기본 자격을 나열하게 됩니다.

 

우리는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우리는 그가 향했던 곳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데마와 두기고를 보내어 사역을 하게 하고, 디도는 니고볼리로 와서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즉, 바울은 니고볼리에서 디도를 기다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 (딛 3:12).

바울의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세우고자 하는 깊은 열망과 지역 교회들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원하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기에 자신의 사역의 수고가 열매 맺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향한 강한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 주님의 지상사명의 두 번째 부분에 강조를 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성도를 세우며 자신의 사역이 재생산되도록 준비된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3. 디모데후서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기록한 마지막 서신입니다. 그는 로마의 감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형을 기다리는 깊은 지하감옥(dungeon)에 있게 됩니다.

 

네로가 통치하던 로마에서 A.D. 64년에 화재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불은 삽시간에 퍼지면서 5일간이나 도시를 태우게 됩니다. 이때 로마의 시내에는 네로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도시를 재건하고자 도시에 불을 붙이도록 명령을 했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그러자, 네로는 자신에게 있는 루머를 돌리고자, 그리스도인들에게 화재의 책임을 묻게 됩니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십자가에 매달아 불을 붙여 길을 밝히도록 하는 악한 일을 하게 됩니다.

 

만일 바울이 이 시간에 잡히게 되었다면, 그는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로서의 형벌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그의 죽음에 관련한 사실을 확신할 수 없지만, 바울은 디모데 후서를 기록할 때에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6-8).

 

사도 바울은 순교의 순간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길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딤후 4:18).

바울의 죽음은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바울이 목베임을 당했다고 증언합니다. 바울은 은혜로서 믿음의 경주를 마치게 됩니다. 바울은 죽었다가 사신 사신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했고, 결국은 그 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5. 우리가 지켜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바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들은 삶의 기초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큰 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적인 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구체적인 계획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부르심은 우리와 다른 점이 있지만, 동일한 과정이 우리의 삶에서도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1세기의 성도들이 갖지 못했던 신약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의 성도들이 바울이 기록한 데살로니가서를 읽어보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바울이 보낸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를 읽어보지 못했을 거십니다. 우리는 우리을 위하여 기록된 신약 성경 27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13권은 바울에 의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선택을 할때에 자유함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살고, 어느 대학에 입학을 하고, 어디에서 일해야 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얼마나 많은 자녀들을 가져야 할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할지, 언제 은퇴해야 할지에 대한 자유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서신을 통해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가 어디를 살든 어느 대학을 다니든,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서 죄의 일에 동참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거나 인생의 동반자를 선택할 때에,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에 관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물질을 나누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헌신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올바른 결정을 내릴수 있도록 성경적인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을 선별하였습니다. 다음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의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

 

갈라디아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

데살로니가전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데살로니가후서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 3:11-13).

고린도전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전 5:9-11).

고린도후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6-7).

로마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8).

빌립보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에베소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엡 5:3-4, 7).

골로새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2).

빌레몬서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몬 20)

디모데전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디도서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너는 이와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딛 2:2-8).

디모데후서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리칠수 있으리라.” (딤후 2:2).

 

2.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에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에 대하여 구체적인 교훈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분의 뜻 안에서 자유함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결정을 할 때에 지혜를 주심으로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지혜를 생각하면서, 그 분의 뜻이 항상 성경에 나타난 교훈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벗어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결정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과 상담하는 것이 중요한 원리가 됩니다. 비록 그들의 충고가 자신의 주관이 반영되더라도, 만일 그들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최선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도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 11:14).

 

3. 하나님은 은혜로 경주를 마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를 바울이 기록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는 바나바아 아볼로 또는 다른 신약의 지도자가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바울이 히브리서를 기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은 바울이 살았던 생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거소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히 12:1).

 

바울은 은혜로서 경주를 마쳤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이 믿음으로 경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