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바울인물연구(13) - 사도바울의 생애로 배우는 영성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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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인물연구(13) - 사도바울의 생애로 배우는 영성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한 사람이라고 하다면, 구약에서는 다윗이고 신약에서는 바울일 것입니다. 바울은 신약 27권 중에서 13권을 기록했으며 선교사역의 열정으로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로마에까지 복음의 사역으로 교회를 세웠던 위대한 사도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생애를 지난 12주간 말씀을 통해서 생생하게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생애를 마무리하면서, 그의 생애를 통해서 배울수 있는 영적인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의 생애를 통해서 배워야 할 영성은 무엇인가요?

 

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5).

 

사도 바울의 변화는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거듭나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이후였습니다. 그는 전에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 핍박하고 죽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의 변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4-5).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삶의 시작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아 새사람이 된 이후부터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듭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은혜로 믿는 자에게 죄사함의 용서와 새 생명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생각과 종교가 절대적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다가 주님이 주신 복음의 소식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새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존 뉴턴은 1725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뉴턴의 어머니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들이 목사가 되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뉴턴이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선원이던 아버지는 이듬해에 재혼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어린 뉴턴의 행실은 점차 삐뚤어졌습니다. 악행을 일삼으며 욕설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당시에 노예상이던 뉴턴은 아프리카에서 무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에 큰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배가 파선되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악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면서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폭풍우는 호전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뉴턴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자신을 기억하신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존 뉴턴은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퇴해 갔지만 늘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내가 죄인이었던 것과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가 작사한 유명한 찬송이 바로 “나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생명을 얻은 후부터는 노예상의 잘못된 직업을 버리고, 목사가 되어 하나님을 찬송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폐지운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결정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는지요?

 

2.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후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은 바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다가가 함께 식사하거나 교제하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가문에서 자랐지만, 그의 배경은 다소라고 하는 길기리아 지역의 이방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방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 일군으로 삼으신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며 순종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그는 이렇게 자신의 사명을 표현합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 3:7-8).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군이 되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는 것은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풍성한 은혜를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과 로마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고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그는 어떠한 시련과 핍박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선교사로 일하다가 생을 마친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요, 대영제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아프리카의 개척자 리빙스턴이 16년간 밀림에서 선교하다가 잠시 영국에 귀국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7번째 말라리아에 걸려 사선을 헤매다가 아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연약한 몸을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사자에게 물린 한쪽 어깨와 팔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설교에서 이렇게 도전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일,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놓고 즐거워하지 아니한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서 많은 희생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도무지 갚을 수 없는 하나님께 진 큰 빚의 작은 부분을 갚았을 뿐인데, 이것을 어찌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장차 영광스러운 소망과 복된 상급을 약속 받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희생이 되겠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한다 라는 말과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것은 절대로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이라고 말하십시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결코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심정을 가지고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우리도 바울이나 리빙스턴처럼 주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제자삼는 사명입니다. 즉, 영혼을 전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우리는 영혼을 전도하여 주님의 제자로 세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은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명령을 주십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하여 전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항해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인 것입니다. 배의 선장은 자신이 가야할 목표를 정하고 항해를 출발합니다. 등산을 할 때도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지난 친교회 때에 소백산을 몇몇 목사님들과 등반을 했습니다. 해발 1440 m 의 높은 산이었는데 멋있지만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정상을 정복하고 산을 내려가는데 한 청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잘못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정표를 잘못 보았기에 한참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는 다른 쪽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올라가는 기분이 어땠을까요?

 

하버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목표가 없는 사람보다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사명을 받은 후에는, 자신이 가야할 목표는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는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였고, 그 방향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여행의 피로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유대인의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알고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헛된 세상의 가치를 위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세상의 분주함에 밀려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그 분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도록 힘써 달려가야 합니다.

 

4. 우리는 은혜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1960년대 유명한 복음주의자이며 교회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한 토저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에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믿는 자가 성장하지 않고 항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며 다만 살만 찐다고 합니다. 둘째는, 믿는 자가 교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오직 참관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는 자가 서로 일치되지 않고 분열과 다툼만 일삼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는 이것을 오늘날 교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알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나아갈 방향을 알아야 하며, 나아가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고자 하시는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줄 알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세워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초점을 그리스도에게만 고정시킬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하면 주님께서는 성장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안에서 변화받아 성장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초기에는 마가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고, 동역자인 바나바와도 다투는 모습을 보이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역의 성장과 더불어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간 것입니다. 그가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즉, 그는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을 묵상하는 삶을 살은 것입니다. 그의 묵상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는 변화를 받아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끊임없이 갈망한 것은 바로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닮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사도 바울은 자신안에 예수님이 사심을 믿었기에, 그분과 같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갈망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닮기 위하여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고자 하는 강한 열정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장하고 있는지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변화되고 있는지요? 우리는 날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5. 우리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 15:8-9).

 

사람은 낮아지지 않고는 높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사람은 낮추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의 뜻은 ‘작은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항상 ‘작은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소아시아 지역에서 큰 부흥을 일으키고 많은 제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웠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칠 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마술쟁이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주변 지역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을 항상 주님의 ‘그릇’임을 명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쳐 일으키자,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 추앙하고 제사를 지내려 했지만, 그는 단지 인간이며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항상 낮추었고,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이며 심지어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도에 비하여 못난 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을 귀하게 여기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라는 말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은 항상 작은 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단지 주님의 종이었으며, 항상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겸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그릇이기에 항상 겸손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였던 무디는 원래의 직업이 구두직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받고 난 후에 전도자가 되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15분 동안 설교를 하였는데, 그 설교후에 어느 대학교수가 다가와서 '무디선생, 당신이 지금 15분간 설교하면서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 16군데나 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무디는 얼굴이 벌겋게 변하면서, '내가 배운것이 없는 사람이라 그러합니다'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리고는 '나는 비록 무식하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데, 당신은 그 많은 학식을 가지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소'라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무디는 자신을 비하하는 가운데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오히려 거만한 교수를 도전하여 부끄럽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6.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의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사도 바울은 선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는 성령이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서 선교의 현장으로 보내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3:2). 성령께서 바울을 세워서 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지로 보내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이 무시아 앞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으나 성령이 허락지 않으시고, 밤에 환상으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라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을 보여주심을 믿고 유럽으로 가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바울은 이와같이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육신의 생각이나 계획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고, 말씀 가운데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께 의존하며 인도함을 받는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며 왕께 무릎 꿇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인생을 항해했습니다. 그가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어디에 있든지 찬송할 수 있었고, 어디에 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7. 우리는 믿음으로 인생을 완주해야 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마라톤에서 수천명이 출발하지만 마지막 까지 완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42.195 km 를 완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달리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경주도 완주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완주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목회자로서 목회의 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면서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대부분의 실패의 이유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믿음의 여정에서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거나, 시험과 환난에서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는 시험으로 인하여 교회를 떠나 떠돌기도 하는 성도들도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마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까지 믿음의 경주를 경주했습니다. 그는 복음으로 시작했고 마지막 로마에서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할 때까지 후회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을 보내는 감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우리는 마지막까지 완주하기 위하여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며 한걸음 한걸음 주님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재산은 교육이나 재산이 아닌, 영적인 믿음의 유산이며 우리의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님을 만났을 때에 후회없는 삶으로 인하여 큰 상을 받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의 원리를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배우고 실천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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